이상을 향해 분투하는 어느 교육자의 자기성찰 기록

실행연구가 Geoffrey Mills(2005)는 “교육자로서 우리가 비록 이상과는 항상 거리가 있지만 어떤 식으로든 이상을 향해 분투한다는 원칙에 헌신하는 것”을 교육의 본질로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상을 향한 분투는 곧 끊임없는 실패의 반복을 의미합니다. 하지만 실패의 경험은 문제의 원인과 해결책을 좀 더 정확히 파악할 수 있도록 자극하고, 도전과 성찰의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정신적인 도약 즉, 성장을 가능하게 만듭니다. 그렇기 때문에 가장 많은 실패를 경험한 사람이 가장 노련한 전문가가 되는 것이죠.
포기하지 않는다면 실패는 성공을 위한 과정에 불과합니다. ‘황금으로 변하는 상처’는 언제나 시행착오에 따른 ‘폐허의 시간’으로부터 만들어진다는 점을 잊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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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장이 터질 듯 뛰고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를 때면 나는 어쩌면 다른 선택을 했을지도 모르는 과거의 갈림길을 떠올린다. 이윽고 땀에 흠뻑 젖은 채 러닝머신을 내려오며 하루의 루틴을 성공적으로 시작한 것에 뿌듯해한다. 그리고 어쩌면 30분 남짓의 이 짧은 순간이 지금까지의 내 삶의 축소판이 아닐까 생각한다.
나의 하루는 아파트 단지 내 작은 헬스장에서 시작된다. 40~50대의 주부들이 주요 고객인 이 헬스장은 정말 기본적인 시설만 갖추고 있는 사실상의 친목 공간이다. 서로 반갑게 인사하고 삼삼오오 대화를 나누는 이 화목한 공간에서 나는 주변 풍경에 녹아들지 않는 고독한 이방인이다. 아마 며칠 동안 나를 지켜본 카운터 직원도 그렇게 생각하는 듯하다.
매일 같은 시간 헬스장에 나타나 가장 구석에 있는 러닝머신에 올라간다. 달리는 동안 TV도 보지 않고 음악도 듣지 않는다. 오로지 달리기에만 집중하는 것 같은데 어느 순간 러닝머신 위에서 전력 질주를 한다. 그러다 이내 큰 숨을 거칠게 몰아쉬며 기진맥진한 채 헬스장을 나선다.
언젠가 스타벅스 매장에서 스마트폰이나 노트북을 사용하지 않고 가만히 커피만 마시는 사람은 킬러 거나 킬러 업계에 종사하는 사이코패스라는 농담을 본 적이 있다. 헬스장에 와서 미친 듯이 달리기만 하고 홀연히 사라지는 저 덩치의 정체는 뭘까. 킬러는 아니니 'Crazy Running Machine Guy' 정도로 불러야 하나? 
처음에는 가볍게 즐기는 마음으로 시작했다. 고요한 도심 속 새벽 공기를 가르는 멋진 광고 모델을 상상하며 체형관리와 약간의 자기만족(?) 정도를 원했다. 하지만 달리기를 시작한 지 정확히 하루만에 생각이 바뀌었다. 구체적인 계기는 바로 4km를 달린 뒤 계기판에 찍히는 시간이었다. 4km는 내가 복무했던 비행단의 기지 둘레인데 20대 초반의 나는 20분 정도면 기지 한 바퀴를 충분히 돌 수 있었다. 이는 시속 12km의 속도로, 100m 달리기로 환산하면 30초에 해당하는 평범한 속도다. 그래서 보통 2바퀴, 컨디션이 좋은 날에는 3바퀴를 뛰곤 했는데 시간이 많이 지난 것일까?
4km를 달리는 데 30분이 걸렸다는 사실은 내게 꽤 큰 충격을 주었다. 그것도 엄청나게 숨을 헐떡이며 겨우 30분을 맞췄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건강을 당연히 여기는 사이에 체력이 많이 떨어진 것이다.
이후 헬스장은 고독함에 혹독함이 추가된 기록 경신의 훈련장이 되었다. 4km라는 거리는 고정되어 있으므로 시간을 줄이기 위해서는 속력을 끌어올리는 수밖에 없었다. 시속 6.5km로 3분간 진행되었던 워밍업은 1분 30초로 축소되었고, 이후 2km 지점까지 시속 8.5km, 3km 지점까지 시속 9.5km, 그리고 클라이맥스인 3.5km 지점까지 시속 11km를 찍었던 최대속도는 각각 2km/h씩 빨라졌다. 어느 순간부터는 워밍업 시간을 생략하고 바로 10km/h로 달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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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과정에서 나는 이상한 기시감을 느꼈다. 그 누구도 강제하지 않는 기록 단축을 위해 좋든 싫든 러닝머신에 올라 어제의 나와 경쟁하는 모습은 지금까지 내가 살아왔던 방식이었다. 눈에 보이는 점수, 기회, 매출뿐만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상징, 가치, 의미까지 모든 측면에서 더 나은 선택을 하기 위해 나는 오랜 시간 스스로를 엄격히 통제해왔다. 다행히 이러한 노력은 시기와 운이 잘 맞았다.
신발 사이즈에 불과했던 TOEIC 점수를 만점으로 만들었고,
미대 입시, 재수, 편입을 거쳐 명문대 타이틀을 확보할 수 있었으며,
전 월 대비, 전 년 대비 매출을 비교하며 얼마간의 돈을 버는 등 좋은 결과로 이어졌다. 그리고 각각의 성취는 다음 단계로 올라서기 위한 디딤돌이 되며 중요한 기회를 제공했다. 내가 한 일은 그저 한 칸 올라서서 다시금 새로운 러닝머신을 달리는 것뿐이었다.
그동안 포기해야 했던 것들도 많았다. 현재의 즐거움을 계속해서 미래로 미루다 보니 어느 순간 이러한 의사결정이 습관처럼 굳어진 것이다. '지금 준비하고 있는 시험만 합격하면', '직장 생활의 명운이 걸린 프로젝트만 끝나면', 그리고 '연중 가장 바쁜 입시 시즌만 끝나면'을 주문처럼 외치는 사이 편하게 연락할 수 있는 친구들이 줄어들었다. 노는 것보다 중요한 일은 차고 넘치도록 많았고 나는 점차 무언가 하지 않는 텅 빈 시간을 다룰 수 있는 능력이 사라졌다. 몸은 현재에 존재하지만 정신은 미래의 어딘가를 헤매고 있던 것이다.
더 큰 문제는 집과 학교, 집과 직장만을 오가는 단조로운 삶이 만들어 내는 편협함이었다. 주변 시야를 다 가리고 앞만 보며 질주하는 경주마처럼 보고 듣고 경험하는 사람과 사건의 범위가 줄어들다 보니 세상에 대한 호기심과 열정도 같이 줄어들었다. 그저 계속해서 똑같은 대사와 루틴을 반복하며 주인공의 레벨업이나 퀘스트 달성을 돕는 NPC(non-player character)가 된 듯한 느낌을 떨쳐버릴 수 없었다.
하지만 지난 시간을 후회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내게 주어진 단 한 번의 기회(one shot)라는 간절함, 단순하고 절제된 삶과 반복된 노력, 그리고 더 나은 삶에 대한 기대와 갈망이 모여 지금의 내가 될 수 있었기 때문에 나는 다시 20살로 돌아간다고 해도 똑같은 선택을 할 것이다.
그렇지만 만약 다시 돌아갈 수 있다면, 이번에는 긴장으로 굳어진 몸과 마음의 힘을 빼고 스스로를 돌보면서 좀 더 여유 있는 자세로 살고 싶다. 그때는 잘 몰랐지만 성취의 계단을 올라간다는 것은 러닝머신 위에서 더 빠른 속도로 더 오랜 시간 달려야 한다는 것을 의미했다.
게다가 달리는 속도와 종료 시점에 대한 결정권이 내게 없었다. 흔히 높은 직급에 오르게 되면 자기 마음대로 권력을 휘두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데 그건 대단한 착각이다. 오히려 반대로 무수한 이해관계자들의 조언, 권고, 추천, 보고, 요청, 문의, 항의, 통보, 압박, 협박에 시달리다 보면 정신이 걸레짝처럼 너덜너덜해지는 경우가 태반이다. 즉, 내가 하는 일의 상하좌우에 여러 사람들이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영역이 매우 제한적이라는 의미다.
무엇보다도 안타까웠던 것은 당시의 내가 러닝머신 위에서 내려오는 것을 실패라고 생각했다는 점이다. 미친 듯이 러닝머신을 달렸으면 내려와서 땀을 닦고 쉬는 것이 당연한데, 나는 달리는 것 자체에 너무 심취해 있었고 심지어 오만했다. 천천히 달리고 있는 사람이나 내려와 쉬고 있는 사람 그리고 헬스장에 오지 않는 사람들을 한 데 묶어 모조리 게으른 사람 취급하며 더 빨리 더 높이 날아오르는 것에만 몰두했다. 하지만 실패가 두려워 잠깐의 휴식조차 스스로에게 허락하지 못했던 나는 결국 태양 가까이 날아가다 날개에 붙인 밀랍이 녹아 바다에 떨어진 이카루스(Icarus)처럼 한 순간에 추락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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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화된 건강과 생체 리듬을 회복하는 일은 어려웠다. 나의 몸을 마치 타인의 몸처럼 착취한 결과는 처참했다. 늘어난 체중부터 거북목, 척추측만증, 터널 증후군, 그리고 수면장애까지. 어느 곳부터 손봐야 할지 감도 안 오는 지경이었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정신이 극도로 피폐하고 쇠약해진 것이었다. 나의 장점인 강한 자신감과 특유의 추진력은 사라졌다. 대신 끝없는 허무와 무기력이 온몸을 가득 채웠다. 상황이 이 지경이 됐는데도 마음 한 구석에서는 '너는 실패자야'라는 목소리가 끊임없이 들렸다. 무서웠다. 나는 무엇을 어떻게 어디부터 손대야 할지 몰랐기 때문에 그냥 가만히 있었다. 말 그대로 침대에 누워서 가만히, 의자에 앉아서 가만히, 바닥에 붙어서 가만히 시간을 흘려보냈다.
Crazy Running Machine Guy
무언가 남다른 성취를 이루기 위해서는 특별한 심리 상태가 필요하다. 미래에 대한 낙관적인 기대와 할 수 있다는 동기부여가 대표적이다. 나는 특유의 상상력을 토대로 자기 최면 상태를 만드는 데 뛰어난 실력을 발휘했고, 덕분에 작지 않은 성취를 이룰 수 있었다. 하지만 마음이 금융기관처럼 작동한다는 사실은 잘 몰랐다. 마음은 성취의 짧은 기쁨이 가시기도 전에 그동안 대출해준 긍정성을 한꺼번에 회수해갔다. 이윽고 나는 깊고 무거운 허무감에 빠졌다.
9월은 참 힘든 계절이다. 6월말부터 시작된 고3들의 수시원서 접수가 마무리되는 시점이라 체력이 바닥난 탓도 있지만, 나를 더욱 힘들게 하는 건 환절기마다 심해지는 알레르기성 비염이다. 비염의 가장 큰 문제는 코막힘이 심해져 수면의 질이 엄청나게 떨어진다는 점이다. Mi Fit의 측정 결과, 환절기의 깊은 수면은 1시간 미만으로 확인되는데 이는 평상시의 1/3수준 밖에 되지 않는다. 수면이 부족한 뇌는 물컹한 젤리 속에 빠져 허우적대는 생쥐처럼 행동한다.
우선 마음을 일정하게 유지하기가 어렵다. 평소였다면 아무렇지도 않았을 일에 대해 크게 화나거나, 크게 놀라거나, 크게 위축되는 등 감정의 동요가 심해진다. 또한 신체운동 능력이 떨어진다. 목, 허리, 어깨의 긴장도가 평소보다 높아지고, 민첩성이나 반응도가 낮아져 손가락 하나 까딱하기 싫은 무기력이 지속된다. 끝으로 정보에 대한 인지 능력과 집중도가 현저히 떨어진다. 평소 1시간이면 처리할 수 있는 일이 3시간이 걸린다거나 한 달 전 내가 쓴 글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른다. 같은 몸을 갖고 있지만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는 건데, 한마디로 바보가 되는 것이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따로 있다. 부족한 수면에 의해 가장 크게 영향을 받는 것은 바로 '정서'다. 환절기 며칠 동안 나는 감정의 롤러코스터에 시달린다.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오르락 내리락 하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떨어지기만 하는 끔찍한 롤러코스터의 탑승객이 된다. 대표적인 증상은 다음과 같다. 아무것도 재미없고 무한정 지루하고 완전히 귀찮다. 어제까지만 해도 중요했던 모든 일에 갑자기 흥미를 잃는다. 앞으로의 미래가 기대되지 않고 사는 것이 무의미해진다. 나를 둘러싼 세상은 총천연색의 컬러지만 나의 뇌는 흑도 백도 아닌 회색으로 세상을 인식한다. 이 회색빛 세상에서 나는 앵무새처럼 '지겹다'를 반복하는 허무함의 노예로 전락한다.
허무함은 감정 중에서도 가장 다루기 어려운 감정이다. 다루기 어렵다는 의미는 평가절하, 회피, 무시를 특징으로 하는 허무함의 발전적인 활용 방향을 찾기가 어렵다는 의미다. 부정적인 감정이라고 해서 단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슬픔, 불안, 분노는 일반적으로 경험하고 싶지 않은 감정이라고 생각되지만 나름의 장점을 갖고 있다.
슬픔은 주변 사람과 상황으로부터 자신을 잠시 떨어뜨릴 수 있게 도와준다. 이를 통해 에너지를 보존하고 자신에게 몰두하는 시간을 가짐으로써 몸과 마음을 회복할 수 있다.
불안은 채워지지 않거나 준비되지 않은 것을 드러내는 역할을 한다. 무의식의 심해에 잠겨 있는 불안의 원인을 의식의 수면 위로 끌어올리는 과정에서 숨겨진 퍼즐을 찾고 자아의 전체적인 그림을 완성할 수 있다.
분노는 적절한 수준의 사회적 경고를 가능하게 한다. 이를 통해 분노를 무조건 억제해서 생기는 '화병'을 예방하고 자신의 심리적, 물리적 영역을 지킬 수 있다. 하지만 허무함은 정말 위험하다. 하루 아침에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 그동안 열심히 쌓아온 모든 것을 손바닥 뒤집듯 한순간에 부정하는데, 이걸 어떻게 긍정적으로 생각할 수 있을까. 허무함은 아무런 의욕도, 희망도 없는 살아 있는 죽음이다. 

수 년의 시간 동안 나는 허무함의 그림자도 밟아보지 못한 채 정체 모를 이 감정에 꼼짝 없이 당하고만 있었다. 그러다 우연히 한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님의 칼럼을 통해 마음이 금융기관처럼 작동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성공의 핵심 요인 중 하나는 바로 긍정성이다. 긍정성은 삶의 위기에도 불구하고 목표를 향해 계속해서 달릴 수 있도록 하는 심리적 에너지원이다. 특히 동기부여는 매우 많은 긍정성을 필요로 하는데, 그 이유는 '할 수 있다'는 자기 최면의 에너지 폭탄을 성취를 달성할 때까지 계속해서 터뜨려야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큰 성취를 준비하는 입장이 되면 평소보다 많은 긍정성이 필요하기 때문에 대출을 받아야만 했다.
결론적으로 나는 엄청난 양의 긍정성을 대출받은 덕분에 작지 않은 성취를 이룰 수 있었다. 하지만 문제는 성취를 이룬 순간에 나타났다. 마음은 더 이상 긍정성을 제공해주지 않았고 지금까지 대출해간 긍정성을 갚으라고 요구했다. 마음이 원하는 것은 간단했다. 이제는 나를 즐겁게 해달라는 것이었다. 허무함의 정체는 바로 긍정성의 빚을 회수하러 온 채권업자였다.
허무함의 정체
사람들은 냉혹한 진실보다 달콤한 거짓을 더 좋아한다. 입시분야의 대표적인 환상은 터무니 없이 낮은 성적의 학생이 전설적인 입시컨설턴트를 만나 명문대에 합격하는 것이다. 재수생인 A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는 본인의 실력으로 절대 갈 수 없는 대학만을 고집하고 있었다. 일확천금을 꿈꾸고 있는 A의 눈은 갈망으로 반짝였고 굳게 닫힌 귀 앞에서 나의 조언은 힘을 잃었다. 무엇이 이토록 그의 마음을 강렬하게 사로잡고 있는 것일까. 나는 똑같은 눈빛을 하고 있던 16년 전의 내게 질문을 던졌다.
재수생 A와의 만남은 2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A는 수도권에서 조금 떨어진 지역의 일반고를 졸업한 학생으로 최종 내신 2점 중반에 비교적 완성도 높은 비교과를 갖고 있는 친구였다. 하지만 A는 전년도 수시 모집에서 모두 불합격하고 수능에서도 평균 4등급의 성적을 받았다. 도무지 자신의 대입 결과를 받아들일 수 없었던 A는 정시 모집에 지원조차 하지 않았고, 부모님을 설득해 기숙학원에서 재수를 시작했다.
하지만 성적은 생각보다 잘 오르지 않았다.
해가 바뀌고 치른 3월 모의고사에서 작년보다 낮은 성적을 받아 절치부심하며 노력했지만, 수능 성적의 바로미터(barometer)가 되는 6월 모의고사에서 3월 보다 더 낮은 성적을 받고 말았다. 이후 고민 끝에 수시 모집에 다시 도전하기로 결심했고 작년 합격생의 소개로 나와 인연이 닿았다.

기숙학원에 있어 연락이 어려운 A를 대신해 상담 전 어머님과 전화로 긴 시간 대화를 나눴다. 어머님께서는 A가 자존심이 매우 강한 학생이라는 말로 이야기를 시작하셨다. A는 어릴 때부터 공부를 곧잘 했고 학급 반장을 놓친 적이 없었으며 학교 선생님들로부터 사랑받는 학생이었다. 그런데 고등학교에 입학할 무렵 사춘기가 찾아왔고 생각했던 것만큼 성적이 잘 나오지 않아 크게 스트레스를 받았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교생활에 충실하며 나름의 성과를 만들었으나, 원서를 쓸 때 일부 선생님들과의 충돌로 입시전략이 엉망이 되었다는 말을 덧붙이셨다. 나는 수도 없이 들었던 '유망주의 안타까운 실패담'을 다시 한 번 곱씹으며 A의 학생부와 자기소개서 그리고 지원 대학 리스트를 전해받았다. 그리고 이내 A가 왜 수시로 쓴 6개 대학에서 전부 떨어졌는지 알 수 있었다. 
A는 큰 키에 단정한 용모 그리고 검은색 뿔테 안경 너머의 고요한 두 눈이 인상적인 학생이었다. 나의 질문에 차분하고 조리 있게 답하는 A를 보며 어머님의 말씀이 사실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멈추지 않고 흐르는 땀, 계속해서 고쳐쓰는 안경, 그리고 쉴 새 없이 까딱이는 손가락은 A가 이 자리를 불편하게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A의 바디랭귀지는 A가 컨설팅을 받는 이유가 자기 수준에 맞는 대학을 알아보기 위함이 아니라는 것을 말하고 있었다. A는 자신이 가고 싶은 대학을 바꿀 생각이 조금도 없었다. A가 원하는 것은 명문대 합격에 조금이라도 더 가까워질 수 있는 '비밀스러운 기술'이었다.
A같은 학생을 처음 만나본 건 아니었다. 하지만 A는 좀 더 특별한 구석이 있었는데 그것은 A의 쇠심줄 같은 고집이었다. 

A의 세상에서 대학은 흔히 SKY로 통용되는 세 개 대학뿐이었다. SKY에 입학하기 위해 재수는 물론 삼수까지 하겠다고 말하는 A의 갈망을 이해할 수 없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문제는 본인의 실력에 대한 자기객관화가 부족했다는 점이다. 여기서 말하는 자기객관화란 1학년 때부터 지속적으로 교과 내신과 모의고사 성적을 모니터링하며 갈 수 있는 대학과 가고 싶은 대학 간의 차이를 줄여가는 과정을 의미한다. 입시에는 합격과 불합격이 있고 합격을 위해 필요한 점수가 엄연히 존재한다. 그렇기 때문에 학생들은 해당 점수에 따라 스스로를 끊임없이 점검해야 하는데, A는 이러한 과정이 전무했던 것이다. 그 결과 '내가 생각하는 나'와 '세상이 평가하는 나' 사이에 큰 괴리가 생겼고, 수시 원서 접수를 할 때가 되어서야 비로소 인식하게 된 냉정한 현실을 A는 결코 받아들일 수 없었던 것이다.
보통 교육특구나 지방 명문고에서는 학교 자체적으로 수년에 걸쳐 축적한 졸업생 입시 데이터가 있다. 그렇기 때문에 갈 수 있는 대학과 가고 싶은 대학 간의 차이가 적은 편이고 학생 스스로도 이를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일부 사립고교를 제외한 대다수의 일반고에서는 입시 데이터는 고사하고 순환보직으로 인해 진학지도를 담당하는 선생님이 계속 바뀌기 때문에 전문성과 노하우를 축적할 수 있는 기회가 부족하다.
공교육 차원의 합불 데이터가 존재하지만 이는 고등학교 유형 및 수준에 대한 분석이 빠져 있어 개별 학교와 학생에게 적용하는 데 어려움이 많다.
이러한 이유로 상당수의 학생들이 3학년이 될 때까지 이렇다 할 입시전략 없이 학창시절을 보내고, 3학년 1학기가 끝나고 나서도 개별화된 진학지도를 경험하지 못한다. 그래서 수시 원서 접수를 얼마 앞두고 사설 업체의 데이터를 활용해 부랴부랴 지원 대학을 결정하는데, 이 또한 모집단이 해당 플랫폼의 사용자로 제한되고 전체 합격자의 50분위 혹은 80분위 값을 토대로 추정하는 방식이라 적합성과 정밀도가 떨어진다.

나는 자기객관화를 위한 진학상담이 A에게 충분히 제공되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학교에 재학 중일 때 지원가능한 대학을 알아보지 않았냐는 질문을 던졌고, 나의 질문에 A는 원서를 쓰기 전 담임 선생님께서 ’대입상담 프로그램’을 돌려 추천 대학을 선정해주셨다고 답했다. 학교에서 추천해준 대학은 몇몇 학교를 제외하면 크게 이상하지 않았다. 그래서 왜 이 대학들을 쓰지 않았냐고 물어보았는데 돌아오는 대답이 기가 막혔다.
A는 가볍게 한숨을 내쉬며 "이런 대학을 다니고 싶지 않다"고 짧게 말했다.
미세하게 떨리는 A의 목소리에서 '어떻게 나한테 이런 대학을 추천할 수 있느냐'라는 속뜻이 느껴졌다. A에게 과분한 대학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나는 그제서야 A에게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진학지도의 적합성과 정밀도는 중요하지 않았다. A에게 중요한 건 본인이 갖고 있는 '자기 개념(Self Concept)'에 걸맞은 대학이었다. A는 진심으로 자기 자신을 SKY에 충분한 인재라고 생각하고 있던 것이다.
어떤 재수생의 고집
수년간 휴가도 모르고 살아오다 어느 날 문득, 아무런 계획도 없이 제주도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혼자 떠난 여행에서 특별한 걸 기대한 건 아니었다. 단지 무한히 늘어선 큐브처럼 답답한 일상을 잠시라도 벗어나고 싶었던 것이다. 하지만 수목원과 휴양림 그리고 올레길로 채워진 일정 속에서 나는 뜻밖에도 일종의 계시를 받았다. 그것은 나아갈 방향을 잃고 어둠을 헤매던 내게 새로운 미래를 보여주는 한 줄기 빛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공부를 잘하는 학생들만 입시컨설팅을 받는다고 생각하는데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최상위권부터 상위권 그리고 중하위권까지 다양한 성적대의 학생들이 현재 자신의 조건에서 갈 수 있는 최대치의 대학을 찾고, 좀 더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입시컨설턴트를 찾는다.
경험상 최상위권, 상위권, 중하위권의 비율은 3:5:2 수준이며 대체로 SKY 혹은 TOP7에 조금 못 미치는 상위권 학생들이 입시컨설팅의 주요 고객이 된다. 나는 이들에게 학생부종합전형의 다양한 공략법을 제시했고, 다행히 이러한 방법은 효과가 커 많은 학생들이 원하는 대학에 합격할 수 있었다.
그리고 10년의 경험이 쌓인 지금은 컨설팅으로 커버할 수 있는 영역이 광범위해지고, 방법론 또한 고도로 정교해지면서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수준까지 진화했다. 

경력기술서에서 밝힌 것처럼 나는 지난 10년 동안 진로와 진학, 수시와 정시 그리고 고입과 편입을 포괄하는 대학입시 전 분야의 유기적이고 종합적인 컨설팅 역량을 쌓아왔다. 학생과 학부모의 니즈에 민첩하게 대응하며 내게 부족한 부분을 채워가는 과정은 곧 학생의 잠재력을 실현하는 과정이었다. 치열하고 고된 과정이었지만 매년 대학입시를 넘어선 더 큰 뜻에 조금씩 가까워지고 있다는 생각에 힘든 줄 몰랐다. 그 뜻은 '학생들의 자기실현을 돕는 사람이 되겠다'는 비전이었다.
실제로 입시컨설팅을 통해 자신의 미래를 구체적으로 생각해 볼 수 있었다거나 선생님 덕분에 합격했다는 말을 듣게 되면, 내가 추구하는 이상과 행동으로 드러나는 현실이 조화롭게 균형을 이루고 있는 것 같아 스스로 자랑스러웠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건 드문 일이었다. 대부분의 학생들에게 나는 돈을 주고 고용한 용병일뿐이었다.
열심히 만든 컨설팅 보고서나 종합리포트를 받고도 감사하다는 말 한 마디 없는 건 예삿일이었고, 말도 안 되는 트집으로 이미 다 진행된 컨설팅 수강료를 환불해가기도 했다. 사업이 어느 정도 자리잡은 후에는 학생을 걸러받으며 이런 일이 줄어들긴 했지만, 합격의 영광은 자신이 모두 가져가고 불합격의 책임은 모두 나에게 돌리는 건 그대로였다.
이건 학생의 성적, 성별, 지역과 상관없이 매년 반복되는 현상이었다. 그렇게 나는 얼마 되지 않는 돈을 받고 영혼을 파는 일에 점차 염증을 느끼기 시작했다. 그러다 작년 이맘때쯤에는 너무 지긋지긋한 나머지 어디론가 떠나지 않고는 도저히 참기 어려운 수준까지 도달하고 말았다. 
사실 입시컨설팅이라고 해서 여타의 서비스 업종과 다를 건 없다. 공급자는 소비자의 문제를 해결하고 소비자는 이에 대한 대가로 돈을 지불하면 그만인 것이다.
이러한 생각은 무언가에 늘 찌들어있는 표정을 하고 있던 J원장의 염세적 태도의 근간이 되고 있었다.
내가 대치동에서 처음 만난 J원장은 학생에게 큰 정 주지 말고 하는 일에만 집중해야 이 업계에서 성공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나는 J원장이 무언가를 가르칠 자격이 없는 형편 없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가급적 거리를 두고 데면데면한 사이로 지냈다. 하지만 어느 순간 내 안의 J원장을 마주하면서 그때의 그가 어떤 심정으로 한 말이었는지 충분히 이해할 수 있게 됐다. J원장 또한 가르치고 배우는 사제관계와 돈의 지불과 평가에 따른 갑을관계 사이에서 정체성의 혼란을 경험했을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사교육의 특성상 결코 피할 수 없는 일종의 직업병이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따로 있었는데, 그것은 방향감각의 상실이었다. 지금까지의 행동을 돌이켜보니 '학생들의 자기실현을 돕는 사람이 되겠다'는 비전에는 '충분한 돈을 지불한'이라는 말이 생략되어 있는 것이 분명했다.
내 능력을 발휘해 돈을 버는 것이 불법도 아니고, 다른 사람들도 다 그렇게 사는데 뭐가 문제냐고 반문하는 내게 자아 이상은 조용히 답했다. 너는 지금보다 더 나아져야 한다고, 더 많은 사람들을 도와야 한다고, 세상에는 너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훨씬 많다고 얘기했다.
나는 무거운 요청에 짖눌렸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한참을 망설였다. 그러다 불현듯 제주도행 비행기표를 끊었다. 어딘가 탁 트인 곳을 계속해서 걷고 싶은 기분이었다.
직업병
그렇게 갑작스러운 나홀로 제주도 여행이 시작됐다. 비행기에서 내리기 전까지만 해도 머릿속에 생각이 떠나지 않아 여행을 괜히 왔나 싶었다. 그런데 의외로 제주공항의 야자수를 보자마자 내가 여행을 '진짜' 왔다는 사실이 실감나면서 갑자기 신이 나기 시작했다. 무언가 새로운 걸 시도해보고 싶었던 나는 자동차 대신 스쿠터를 타보기로 했다.
스쿠터가 조금 위험하긴 했지만 일행이 있을 때는 좀처럼 시도해볼 수 없는 일이었기 때문에 과감히 도전해보았다. 그리고 스쿠터를 타고 돌아다닌 5일 간의 시간은 더할 나위 없이 행복했다.
청량한 가을 하늘부터 깨끗한 제주바다, 우뚝선 한라산, 고요한 휴양림, 멋드러진 올레길, 그리고 아름다운 동백꽃과 갈대밭까지 제주의 품 안에서 나는 몇 년 만의 자유를 만끽할 수 있었다. 특히 제주도의 해안도로와 한라산 1100도로를 가로지르는 순간은 온몸으로 제주도를 느낄 수 있었던 최고의 경험이었다.

그래도 마음 한 구석에는 더 나은 삶에 대한 자아 이상의 요청이 남아 있었다. 나는 할수만 있다면 여행이 끝날 때까지 못 들은 체하고 그저 먹고 마시면서 에고를 즐겁게 해줄 생각이었다. 자아 이상도 이 마음을 알았는지 여행 3일차까지는 별 말이 없었다. 그러다 4일차 오전, 조천읍에 자리한 사려니숲길을 걷는 내게 조용히 말을 걸어왔다.
이른 아침의 안개가 짙게 깔린 빼곡한 삼나무 숲은 몽환적인 분위기를 자아내며 깊은 내면으로 나를 이끌었다. 요즘 어떻게 지내냐는 질문으로 시작된 대화는 과거와 현재, 인물과 사건, 생각과 감정을 종횡무진하며 트래킹 내내 이어졌다. 그 사이 코를 간지럽히는 흙냄새와 풀냄새 그리고 곧게 뻗은 나뭇가지 사이로 내리쬐는 햇빛은 내 마음을 부드럽게 어루만지며 새로운 기운을 불어넣고 있었다.
그렇게 2시간의 시간이 지나 다시 입구로 나온 나는 왜 제주도민들이 사려니숲을 신성한 숲이라고 부르는지 알 수 있었다. 그곳은 에고의 경계 너머를 보여주는 영적(spiritual)인 공간이었다.
사려니숲에서 깨달은 건 지난 시간의 의미와 앞으로 나아갈 길이었다. 20대 중반까지의 혹독한 진로탐색과 이후 진로진학 분야에서의 10년은 내가 전문가로 거듭나기 위한 시간이었다. 이 과정에서 나는 소중한 인연들을 만나 부족한 부분을 채울 수 있는 기회를 얻었는데, 돌이켜 생각해보니 그건 때와 장소가 절묘한 너무나 기적같은 일이었다. 또한 최근 들어 자주 느꼈던 부정적인 감정은 새로운 변화가 필요하다는 신호이자 인생의 다음 단계로 나아가야 함을 알려주는 메시지였다. 즉, 진로진학 분야의 인정받는 전문가로 성장하는 것이 이번 단계를 클리어하기 위한 미션이었던 것이다. 나는 인생의 신비한 가르침에 큰 감사함을 느꼈다.
사려니숲은 앞으로의 10년에 대해서도 대략적인 모습을 알려주었다. 그것은 세 단계로 구성된 큰 그림이었다.
첫째, 지금까지 쌓아온 진로진학 분야의 전문지식과 관련 기술 그리고 실무노하우를 하나의 방법론으로 체계화한다.
둘째, 체계화된 방법론을 토대로 공교육과 사교육의 진로진학 컨설팅 전문성 향상에 기여한다.
셋째, 컨설팅 노하우와 IT기술의 결합을 통해 개인맞춤 진로진학 콘텐츠 플랫폼을 구축한다. 이때 각 단계마다 덧붙이는 구체적인 근거와 실천방안은 놀랄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나는 흥청망청 놀고 있는 에고를 대신해 부지런히 문제를 해결해준 무의식에 감사하며 새로운 계획에 '프로젝트 빅스쿨(BigSchool)'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내 마음 속에 새로운 북극성이 반짝였다. 

여행에서 돌아온 나는 교육대학원에 다시 복학하기로 결심했다. 2개 학기를 다니고 사업상의 이후로 1년 반을 휴학한 상태였던 나는 사실상 학교를 그만두는 수순을 밟고 있었다. 그랬던 내가 결국 돌아올 수 있었던 이유는 컨설팅 방법론이라는 것이 단순히 지식을 집대성하는 수준 이상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구체적인 이론적 근거와 체계적인 연구방법론을 토대로 '검증하고 공인하고 공표하는 과정'이 수반될 때 보다 신뢰할 수 있는 연구로 인정받을 수 있기 때문에 석사학위라는 공식문서로 해당 내용을 정리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그래서 상반기에 복학해 진로진학상담과 관련된 선행연구를 꼼꼼히 분석했고, 4학기에 시작된 연구지도를 통해 '실무 중심의 진로진학 컨설팅 프로그램 개발에 대한 연구'라는 석사논문 연구주제를 확정할 수 있었다. 
한편 올해 6월에는 제58대 교육대학원 총학생회장 선거에 출마해 총학생회장으로 당선되며 원우들을 위해 봉사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됐다.
'원우들의 자기실현을 돕는 실력 있는 총학생회'를 비전으로 굿티처스 선본이 내세운 공약들 중 가장 대표적인 건 '진로진학 왕초보스쿨'이었다. 이는 현직에서 학생들의 진로진학지도에 어려움을 겪고 있거나 앞으로 교직에 진출할 예비교사들의 진로진학 상담역량을 강화시키기 위한 프로그램으로 우리가 당선되는데 큰 역할을 했다. 현재 10월 중에 주1회 4주로 구성된 왕초보스쿨의 첫 번째 기수를 운영할 계획을 갖고 있다. 관련자료를 꼼꼼히 준비해 내가 알고 있는 모든 것을 빠짐없이 전달할 예정이다. 많은 원우들이 진로진학지도에 자신감을 가질 수 있는 기회가 된다면 큰 보람이 될 것 같다. 

지금 나는 또 다시 제주도다. 작년과 달리 올해는 숙제가 없다. 그저 한적한 마음으로 제주의 푸른 바다를 감상할 뿐이다.
내가 가야할 길을 알고, 그 길을 열심히 걷고 있고, 계속 걷다보면 결국 목적지에 도달한다는 것. 이것이 바로 내 마음이 평온한 이유일 것이다. 오후에는 사려니숲에 다시 가봐야겠다. 일 년 만에 만난 내게 잘하고 있다고 칭찬을 해줄지도 모른다. 제주도는 내게 참 특별한 곳이다. 
프로젝트 빅스쿨
어느새 36살이 됐다. 시간이 눈깜짝할 사이에 지나간다는 말이 실감나는 요즘이다. 20대의 내가 가장 걱정했던 건 '아무것도 이루지 못하고 젊음을 의미 없이 흘려보내는 것은 아닐까'하는 두려움이었다. 어떻게 하면 지금보다 더 나아질 수 있는지 고민하는 사이에 10년이 흘렀다. 36살의 나는 26살의 내가 꿈꿔 왔던 모습일까.
미대입시부터 재수 그리고 편입을 거쳐 소위 말하는 명문대에 입학하기까지. 20대 초반의 5년은 많은 성취를 이루며 자기 개념을 확립했던 성장의 시간이기도 했지만, 고통스러운 실패를 반복하며 괴로워했던 좌절의 시간이기도 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후배들이 나와 같은 시행착오를 겪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 그 누구보다 강했다. 하지만 바람만 있었을 뿐, 누구(who)에게 어떤(what) 도움을 어떻게(how) 줘야 하는지 구체적인 방법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전혀 없었다. 그래서 맨땅에 헤딩하는 식으로 처음부터 하나씩 알아갈 수밖에 없었다. 휴학까지 하며 기획하고 운영했던 '성북 청소년 잡아드림'이 그 시작이었다. 
이 프로그램은 고등학생들에게 대학의 전공수업을 듣고 직업현장을 체험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이를 토대로 자신의 진로를 구체적으로 설계할 수 있다는 점에서 학생들에게 큰 호응을 얻었다. 하지만 다수의 학생이 단기적으로 참여하는 프로그램이었기 때문에 개별적인 진로지도가 어려웠고, 흥미로운 체험을 중심으로 프로그램이 구성되어 있어 깊이 있는 정보가 부족했다. 특히 대학입시에 실질적인 도움이 안 된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였다.
2012학년도는 2008학년도부터 시작된 입학사정관제가 점차 확대되고 있던 시기로 내신 8등급의 한 학생이 한국의 파브르 소년으로 불리며 연세대에 합격해 큰 화제가 됐었다.
이에 많은 학생들이 비교과 활동으로 대학을 갈 수 있는 수시 전형에 큰 관심을 갖기 시작했는데, 단순한 진로체험 프로그램은 진로를 바탕으로 한 진학지도에 대한 니즈를 충족시키기 어려웠다.
수시 진학지도에 부족함을 느낀 나는 본격적인 연구를 시작했다. 연구는 주로 수차례 진로를 변경하며 참고했던 책과 논문의 핵심내용을 정리하고, 이들 간의 전후를 따져 하나의 방법론으로 체계화하는데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특히 진로탐색 과정이 명문대 합격이라는 실질적인 성과를 냈던 편입학 준비단계를 꼼꼼히 분석해 성공적인 진학에 필요한 요소들을 파악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 결과 'Realself Actualization System'이라는 것을 만들 수 있었다. 이 시스템은 총 5단계로 자아를 찾고, 치유하고, 세우고, 구체화하고, 실현하는 데 도움을 주는 전문지식과 워크시트로 구성되어 있었다. 지금 보면 성인인 나를 대상으로 하는 심리치료나 성공심리에 대한 내용이 많아 고등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수시 진학지도와 조금 거리가 먼 내용이 대다수였다. 하지만 그동안 흩어져 있었던 지식과 경험을 집대성해 체계화시키는 과정에서 나는 무언가 인생의 한 단계가 마무리되는 듯한 느낌을 받았고, 이는 대치동의 수시컨설팅학원에서 대표컨설턴트로 일하게 되며 실제 새로운 시작으로 이어졌다. 

대치동에서의 경험은 노련한 입시컨설턴트로 성장하는데 큰 도움이 됐다. 대치동에 있는 학원이라고 해서 별도의 양성과정이나 특별한 정보가 있는 건 아니었다. 다만 그곳에는 전국에서 몰려온 수준 높은 학생과 학부모를 경험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대치동을 찾는 교육소비자의 니즈는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었다. 첫째는 전문가의 객관적이고 정확한 판단이고, 둘째는 전문가만 아는 비밀스러운 합격기술이다. 사실 이 둘은 순차적으로 이어져 있었다. 객관적이고 정확한 판단을 위해 꾸준히 공부해 다수의 합격자를 배출하면 자연스럽게 실무노하우가 생기는데 이게 바로 비밀스러운 합격기술이 되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 정도 수준에 도달하는 건 어려운 일이다.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큰 이유는 입시컨설턴트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생각만큼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기 때문이다.
비싼 돈이 아깝지 않을 정도의 입시컨설팅을 제공하려면 다음과 같은 단계를 거쳐야 한다. 먼저 교육제도의 방향과 변화에 대한 거시적인 이해와 당해년도 대학별 전형에 대한 미시적인 이해가 필요하다. 다음으로 학생의 평가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는 고등학교 유형 및 수준에 대한 분석이 선행되어야 하며, 끝으로 교과 내신, 모의고사 성적과 같은 양적 정보와 진로희망, 비교과와 같은 질적 정보의 수준 및 완성도를 종합적으로 분석해 대학, 전형, 학과를 선정해야 한다. 그나마 이건 입시컨설팅에 국한되는 내용이고 진로, 자소서, 면접으로 넘어가면 또 새로운 분야의 지식과 경험이 필요하다. 그래서 입시컨설턴트는 교육제도나 대입전형 그리고 전공 및 직업에 대한 최신 트렌드를 끊임없이 공부해야 한다. 하지만 내가 만난 원장들 중에는 공부는 커녕 누구나 알고 있는 기초적인 지식을 전달하며 스스로를 최정상급 전문가로 포장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미리 열심히 공부한 내용을 전문가에게 검증하고자하는 기특한 학생에게 나를 믿지 못하는 거냐며 화를 내는 사람도 있었다. 
물론 나도 초창기에는 기대에 한참 못 미치는 컨설팅 퀄리티 때문에 클레임이 들어와 수강료를 환불해준 적이 있다. 얼굴이 빨개지고 온몸에서 식은땀이 흘렀던 그날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동료 원장님께서는 이런 날도 있는 거라고 위로해주셨지만 나는 더 열심히 준비하지 못한 내 자신에게 너무 화가났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이 모두 퇴근한 늦은 시간까지 홀로 사무실에 남아 치욕을 곱씹으며 앞으로 절대 이런 일을 만들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그날 이후 나는 공교육과 사교육을 가리지 않고 구할 수 있는 모든 자료를 구해 밤낮 없이 연구하며 컨설팅의 체계를 갖춰 나갔다. 가장 먼저 출근해 가장 늦게 퇴근하는 시간이 1년 넘게 이어졌고, 이후 3년의 경험이 쌓이면서 입시에 대한 나름의 식견을 갖출 수 있게 됐다.

나는 3년 동안 쌓아온 진학지도의 전문성을 기존의 강점인 진로지도와 연결했다. 이를 통해 유기적이고 종합적인 분석을 특징으로 하는 독자적인 진로진학컨설팅 방법론을 개발할 수 있었다. 이후 새로운 컨설팅 로직을 실천할 수 있는 새로운 조직이 필요하다고 느껴 학원을 창업했다.
작은 규모였지만 조금씩 입소문을 타며 매년 성장할 수 있었는데, 컨설팅 노하우가 점차 정교해지며 특정 분야의 신뢰할 수 있는 전문가로 인정받는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아직 더 배울 것이 있었는지 인생은 내게 새로운 배움의 기회를 제공했다. 그것은 정시에 대한 내용이었다. 그동안 정시는 지원가능한 대학의 수준을 확인하거나 수능최저의 충족여부를 검토하는 수준이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서초구의 정시컨설팅 프로그램에 컨설턴트로 위촉되며 상황은 바뀌었다. 서초구의 담당 공무원은 내가 놓쳐서는 안 되는 뛰어난 전문가라는 추천을 받았다고 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추천을 한 사람은 내가 지도했던 합격생의 아버지였다.
정시에 대한 공부가 시작됐다. 정시는 수시와 접근방법이 달랐다. 진로와 관련된 활동을 학생부와 자소서 그리고 면접을 통해 정성적으로 평가하는 수시와 달리 정시는 수능점수를 토대로 정확한 정량평가를 실시했다. 이때 객관적인 정시컨설팅을 위해 중요한 건 두 가지였다. 첫째는 대학별 합격선 즉, 배치표 데이터를 확보하는 것이고, 둘째는 학생이 획득한 점수를 토대로 합격가능성을 확률적으로 예측하는 것이었다. 배치표 데이터에 접근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대형학원에서 만든 배치표를 구하거나 진학사와 같은 원서접수 대행업체의 프로그램을 활용하면 그만이었다. 중요한 건 배치표가 만들어지는 원리를 파악하는 것이었다.
긴 연구 끝에 정시 배치표의 비밀을 밝힐 수 있었다. 핵심은 대학 및 전공별 합격자 점수를 수집해 평균과 표준편차를 구하고, 전체 합격자의 상위 70% 혹은 80% 점수에 해당하는 Z값을 토대로 배치표를 만든다는 점이었다. 즉, 정규분포의 원리를 토대로 합격선을 추론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원리를 이해하면 모집단의 데이터가 많을 수록 추정값이 정확해지고 상위 99%의 Z값을 파악하면 특정 대학 및 학과에 합격할 수 있는 가장 낮은 성적을 예측할 수 있는 것이었다. 또한 배치표를 만드는 업체별로 추정값이 다른 이유도 애당초 갖고 있는 모집단의 데이터가 다르기 때문임을 알 수 있었다. 따라서 가장 정확한 정시컨설팅 방법은 적어도 세 개 이상의 배치표를 중복확인해 공통으로 지원가능한 구간에서 대학을 결정하는 방식이라는 결론을 도출할 수 있었다.
지원가능한 대학의 후보들을 정한 다음부터는 진로가 중요했다. 대체로 대학 간판과 학과의 취업 전망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고 그 다음으로 적성이나 흥미 그리고 통학거리 등을 우선순위로 꼽았다. 몇몇 학생들은 전과나 편입, 그리고 대학원의 가능성도 중요하게 고려했다. 이 단계까지 오게되면 수시컨설팅에서 쌓아온 노하우가 빛을 발했다. 학생의 관심분야와 주요활동 그리고 학업계획과 직업전망을 연결해 하나의 장기적인 계획을 제시하고, 이러한 계획 하에서 가나다군의 지원대학을 각각 상중하로 구분해 총 9장으로 제시하면 거의 대부분의 학생과 학부모가 컨설팅 결과를 충분히 납득하고 돌아갔다. 수시와 정시가 대입전형이라는 큰 틀에서 하나로 통합되는 순간이었다. 

컨설팅 경력기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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