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컨설팅 경력기술서

작성일
2021/10/06 11:30
생성일
2022/08/01 01:29
저자
키워드
#대치동, #진로진학, #수시정시
분류
진로진학
리더십
어느새 36살이 됐다. 시간이 눈깜짝할 사이에 지나간다는 말이 실감나는 요즘이다. 20대의 내가 가장 걱정했던 건 '아무것도 이루지 못하고 젊음을 의미 없이 흘려보내는 것은 아닐까'하는 두려움이었다. 어떻게 하면 지금보다 더 나아질 수 있는지 고민하는 사이에 10년이 흘렀다. 36살의 나는 26살의 내가 꿈꿔 왔던 모습일까.
미대입시부터 재수 그리고 편입을 거쳐 소위 말하는 명문대에 입학하기까지. 20대 초반의 5년은 많은 성취를 이루며 자기 개념을 확립했던 성장의 시간이기도 했지만, 고통스러운 실패를 반복하며 괴로워했던 좌절의 시간이기도 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후배들이 나와 같은 시행착오를 겪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 그 누구보다 강했다. 하지만 바람만 있었을 뿐, 누구(who)에게 어떤(what) 도움을 어떻게(how) 줘야 하는지 구체적인 방법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전혀 없었다. 그래서 맨땅에 헤딩하는 식으로 처음부터 하나씩 알아갈 수밖에 없었다. 휴학까지 하며 기획하고 운영했던 '성북 청소년 잡아드림'이 그 시작이었다.
이 프로그램은 고등학생들에게 대학의 전공수업을 듣고 직업현장을 체험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이를 토대로 자신의 진로를 구체적으로 설계할 수 있다는 점에서 학생들에게 큰 호응을 얻었다. 하지만 다수의 학생이 단기적으로 참여하는 프로그램이었기 때문에 개별적인 진로지도가 어려웠고, 흥미로운 체험을 중심으로 프로그램이 구성되어 있어 깊이 있는 정보가 부족했다. 특히 대학입시에 실질적인 도움이 안 된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였다. 2012학년도는 2008학년도부터 시작된 입학사정관제가 점차 확대되고 있던 시기로 내신 8등급의 한 학생이 한국의 파브르 소년으로 불리며 연세대에 합격해 큰 화제가 됐었다. 이에 많은 학생들이 비교과 활동으로 대학을 갈 수 있는 수시 전형에 큰 관심을 갖기 시작했는데, 단순한 진로체험 프로그램은 진로를 바탕으로 한 진학지도에 대한 니즈를 충족시키기 어려웠다.
수시 진학지도에 부족함을 느낀 나는 본격적인 연구를 시작했다. 연구는 주로 수차례 진로를 변경하며 참고했던 책과 논문의 핵심내용을 정리하고, 이들 간의 전후를 따져 하나의 방법론으로 체계화하는데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특히 진로탐색 과정이 명문대 합격이라는 실질적인 성과를 냈던 편입학 준비단계를 꼼꼼히 분석해 성공적인 진학에 필요한 요소들을 파악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 결과 'Realself Actualization System'이라는 것을 만들 수 있었다. 이 시스템은 총 5단계로 자아를 찾고, 치유하고, 세우고, 구체화하고, 실현하는 데 도움을 주는 전문지식과 워크시트로 구성되어 있었다. 지금 보면 성인인 나를 대상으로 하는 심리치료나 성공심리에 대한 내용이 많아 고등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수시 진학지도와 조금 거리가 먼 내용이 대다수였다. 하지만 그동안 흩어져 있었던 지식과 경험을 집대성해 체계화시키는 과정에서 나는 무언가 인생의 한 단계가 마무리되는 듯한 느낌을 받았고, 이는 대치동의 수시컨설팅학원에서 대표컨설턴트로 일하게 되며 실제 새로운 시작으로 이어졌다.
대치동에서의 경험은 노련한 입시컨설턴트로 성장하는데 큰 도움이 됐다. 대치동에 있는 학원이라고 해서 별도의 양성과정이나 특별한 정보가 있는 건 아니었다. 다만 그곳에는 전국에서 몰려온 수준 높은 학생과 학부모를 경험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대치동을 찾는 교육소비자의 니즈는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었다. 첫째는 전문가의 객관적이고 정확한 판단이고, 둘째는 전문가만 아는 비밀스러운 합격기술이다. 사실 이 둘은 순차적으로 이어져 있었다. 객관적이고 정확한 판단을 위해 꾸준히 공부해 다수의 합격자를 배출하면 자연스럽게 실무노하우가 생기는데 이게 바로 비밀스러운 합격기술이 되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 정도 수준에 도달하는 건 어려운 일이다.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큰 이유는 입시컨설턴트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생각만큼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기 때문이다.
비싼 돈이 아깝지 않을 정도의 입시컨설팅을 제공하려면 다음과 같은 단계를 거쳐야 한다. 먼저 교육제도의 방향과 변화에 대한 거시적인 이해와 당해년도 대학별 전형에 대한 미시적인 이해가 필요하다. 다음으로 학생의 평가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는 고등학교 유형 및 수준에 대한 분석이 선행되어야 하며, 끝으로 교과 내신, 모의고사 성적과 같은 양적 정보와 진로희망, 비교과와 같은 질적 정보의 수준 및 완성도를 종합적으로 분석해 대학, 전형, 학과를 선정해야 한다. 그나마 이건 입시컨설팅에 국한되는 내용이고 진로, 자소서, 면접으로 넘어가면 또 새로운 분야의 지식과 경험이 필요하다. 그래서 입시컨설턴트는 교육제도나 대입전형 그리고 전공 및 직업에 대한 최신 트렌드를 끊임없이 공부해야 한다. 하지만 내가 만난 원장들 중에는 공부는 커녕 누구나 알고 있는 기초적인 지식을 전달하며 스스로를 최정상급 전문가로 포장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미리 열심히 공부한 내용을 전문가에게 검증하고자하는 기특한 학생에게 나를 믿지 못하는 거냐며 화를 내는 사람도 있었다.
물론 나도 초창기에는 기대에 한참 못 미치는 컨설팅 퀄리티 때문에 클레임이 들어와 수강료를 환불해준 적이 있다. 얼굴이 빨개지고 온몸에서 식은땀이 흘렀던 그날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동료 원장님께서는 이런 날도 있는 거라고 위로해주셨지만 나는 더 열심히 준비하지 못한 내 자신에게 너무 화가났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이 모두 퇴근한 늦은 시간까지 홀로 사무실에 남아 치욕을 곱씹으며 앞으로 절대 이런 일을 만들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그날 이후 나는 공교육과 사교육을 가리지 않고 구할 수 있는 모든 자료를 구해 밤낮 없이 연구하며 컨설팅의 체계를 갖춰 나갔다. 가장 먼저 출근해 가장 늦게 퇴근하는 시간이 1년 넘게 이어졌고, 이후 3년의 경험이 쌓이면서 입시에 대한 나름의 식견을 갖출 수 있게 됐다.
나는 3년 동안 쌓아온 진학지도의 전문성을 기존의 강점인 진로지도와 연결했다. 이를 통해 유기적이고 종합적인 분석을 특징으로 하는 독자적인 진로진학컨설팅 방법론을 개발할 수 있었다. 이후 새로운 컨설팅 로직을 실천할 수 있는 새로운 조직이 필요하다고 느껴 학원을 창업했다. 작은 규모였지만 조금씩 입소문을 타며 매년 성장할 수 있었는데, 컨설팅 노하우가 점차 정교해지며 특정 분야의 신뢰할 수 있는 전문가로 인정받는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아직 더 배울 것이 있었는지 인생은 내게 새로운 배움의 기회를 제공했다. 그것은 정시에 대한 내용이었다. 그동안 정시는 지원가능한 대학의 수준을 확인하거나 수능최저의 충족여부를 검토하는 수준이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서초구의 정시컨설팅 프로그램에 컨설턴트로 위촉되며 상황은 바뀌었다. 서초구의 담당 공무원은 내가 놓쳐서는 안 되는 뛰어난 전문가라는 추천을 받았다고 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추천을 한 사람은 내가 지도했던 합격생의 아버지였다.
정시에 대한 공부가 시작됐다. 정시는 수시와 접근방법이 달랐다. 진로와 관련된 활동을 학생부와 자소서 그리고 면접을 통해 정성적으로 평가하는 수시와 달리 정시는 수능점수를 토대로 정확한 정량평가를 실시했다. 이때 객관적인 정시컨설팅을 위해 중요한 건 두 가지였다. 첫째는 대학별 합격선 즉, 배치표 데이터를 확보하는 것이고, 둘째는 학생이 획득한 점수를 토대로 합격가능성을 확률적으로 예측하는 것이었다. 배치표 데이터에 접근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대형학원에서 만든 배치표를 구하거나 진학사와 같은 원서접수 대행업체의 프로그램을 활용하면 그만이었다. 중요한 건 배치표가 만들어지는 원리를 파악하는 것이었다.
긴 연구 끝에 정시 배치표의 비밀을 밝힐 수 있었다. 핵심은 대학 및 전공별 합격자 점수를 수집해 평균과 표준편차를 구하고, 전체 합격자의 상위 70% 혹은 80% 점수에 해당하는 Z값을 토대로 배치표를 만든다는 점이었다. 즉, 정규분포의 원리를 토대로 합격선을 추론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원리를 이해하면 모집단의 데이터가 많을 수록 추정값이 정확해지고 상위 99%의 Z값을 파악하면 특정 대학 및 학과에 합격할 수 있는 가장 낮은 성적을 예측할 수 있는 것이었다. 또한 배치표를 만드는 업체별로 추정값이 다른 이유도 애당초 갖고 있는 모집단의 데이터가 다르기 때문임을 알 수 있었다. 따라서 가장 정확한 정시컨설팅 방법은 적어도 세 개 이상의 배치표를 중복확인해 공통으로 지원가능한 구간에서 대학을 결정하는 방식이라는 결론을 도출할 수 있었다.
지원가능한 대학의 후보들을 정한 다음부터는 진로가 중요했다. 대체로 대학 간판과 학과의 취업 전망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고 그 다음으로 적성이나 흥미 그리고 통학거리 등을 우선순위로 꼽았다. 몇몇 학생들은 전과나 편입, 그리고 대학원의 가능성도 중요하게 고려했다. 이 단계까지 오게되면 수시컨설팅에서 쌓아온 노하우가 빛을 발했다. 학생의 관심분야와 주요활동 그리고 학업계획과 직업전망을 연결해 하나의 장기적인 계획을 제시하고, 이러한 계획 하에서 가나다군의 지원대학을 각각 상중하로 구분해 총 9장으로 제시하면 거의 대부분의 학생과 학부모가 컨설팅 결과를 충분히 납득하고 돌아갔다. 수시와 정시가 대입전형이라는 큰 틀에서 하나로 통합되는 순간이었다.
돌이켜보니 배움에는 끝이 없다는 말이 저절로 와닿는다. 진로체험 프로그램에서 시작된 입시에 대한 탐구는 수시 진학지도와 정시 진학지도로 이어졌고, 정시컨설팅은 다시 진로컨설팅으로 이어지며 진로와 진학, 수시와 정시를 교육이라는 하나의 큰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게 됐다. 10년의 시간이 지난 지금, 다행히 36살의 나는 26살의 나를 실망시키지 않았다. 안도의 한숨이 지나간 자리에서 나는 새로운 약속을 하고 있다. 그것은 또 다시 10년이 지나 46살의 내가 됐을 때, 지금의 내게 부끄럽지 않은 내가 되겠다는 약속이다. 46살의 나는 36살의 내가 꿈꿔 왔던 모습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