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home
빅스쿨
home

허무함을 다루는 법

작성일
2021/09/16 14:42
생성일
2022/08/01 01:29
저자
키워드
#허무함, #명상, #평화
분류
상담심리
마음챙김
하지만 정체를 파악한 것과 허무함을 다루는 것은 별개의 문제였다. 가장 어려웠던 것은 내가 알아차리기도 전에 허무의 파도가 밀려들어 나를 잠식한다는 점이다. 갑작스러운 심경 변화에 우물쭈물하는 사이 나는 허무함의 가장 깊은 골짜기로 떨어진다. 허무함의 미로에 갇혀 있을 때는 여기가 어딘지, 언제 끝나는지, 왜 이렇게 됐는지 알 수 없다. 그저 바닥에 널부러진 망부석처럼 시간이 흘러가는 것을 지켜볼 뿐이다. 그렇게 영원 같은 시간이 지나고 어느 순간 문득 능선 위에 올라 허무의 골짜기를 내려다보게 되는데, 그제서야 지난 시간이 휴식의 시간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내 허무함이 이러한 시간의 시작을 알려주는 복선이었다는 것도 깨닫게 된다.
다행히 해가 지날수록 조금씩 수월하게 허무의 시간을 다룰 수 있게 됐지만, 허무함은 여전히 마주 할 때마다 낯설고 어려운 감정이었다. 초창기 몇 년은 허무의 시간이 찾아왔을 때 내가 게을러 지는 것은 아닌지 걱정돼 오히려 억지로 더 열심히 일을 하곤 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성과도 못 내고, 건강도 나빠지고, 관계도 안 좋아지는 경험을 하면서 결코 허무함을 외면하거나 부정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배웠다.
내가 경험한 허무함의 핵심은 과부하(overload)다. 신체적이든 정신적이든 내가 감당할 수 있는 한계치를 지속적으로 넘어서는 순간 몸과 마음이 절전 모드(sleep mode)로 변경되는 것이다. 여기서 '지속적'이라는 것이 중요하다. 나는 항상 내 역량의 100%에 근접하게 일을 벌려놓는 편이라 매년 비슷한 정도로 바빴지만 올해는 유독 신경쓸 일이 더 많았다. 6월 말부터 9월 중순까지의 입시시즌부터 교육대학원 총학생회장 선거 및 총학생회 사업 준비 그리고 대학원 수업 및 석사논문 준비까지 체감상 150%에 가까운 에너지를 3달 연속으로 소비한 듯 한다. 이러니 과부하가 오는 것이 당연했고, 스스로를 절전 모드로 바꿔놓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었던 것이다.
나도 나의 워커홀릭 기질을 잘 알고 있다. 그리고 이런 방식으로는 지속가능한 성취가 어렵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여러 가지 보상 방안을 시도해봤다. 먹고 싶은 음식을 원 없이 먹는 것부터 시작해서 일주일 이상 멀리 여행을 떠나거나 영화관에서 하루 종일 영화를 보거나 백화점에서 쇼핑을 하거나 산책, 러닝, 자전거, 등산 등의 유산소 운동을 하기도 하고, 소맥부터 막걸리, 와인, 그리고 비싼 위스키까지 온갖 종류의 술을 섭렵하는 것까지 내가 할 수 있는 건 모두 해봤다. 그런데 이런 방식도 금방 싫증이 났다. 음식을 원 없이 먹으면 살이 찌고, 술을 원 없이 마시면 몸이 상하고, 여행지는 거기서 거기고, 영화는 진부한 것 투성이고, 운동을 계속 하면 몸이 아프고, 물건은 사면 살수록 공허했다. 나의 에고는 도무지 만족시키기 어려운 까다로운 상대였다.
그러다 작년부터 요가와 명상을 시작했다. 대학 때부터 불교철학에 관심을 갖고 철학과 수업을 듣곤 했는데 문득 명상을 본격적으로 시작해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후 올해 2월에 이사를 하면서 거실을 명상 공간으로 꾸몄는데, 이게 정말 탁월한 선택이였다. 1년의 성취가 모두 거실에 깔린 러그 위에서 나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보통 하루 일과를 마치고 오후 10시부터 12시까지 두 시간 정도 명상에 집중한다. 먼저 하루 종일 의자에서 혹사 당하는 몸을 정돈한다. 큰 근육부터 작은 근육까지 힘을 빼고 세포 하나하나를 연다는 생각으로 온 몸을 최대한 늘려준다. 이때 목부터 어깨, 손목, 허리, 골반, 무릎, 발목에 이르기까지 오랜 시간 경직되어 있던 관절을 부드럽게 돌려주며 운동성을 회복하는데 집중한다. 이후 일련의 요가 동작을 통해 상체와 하체의 틀어짐을 바로잡고 코어 근육을 강화시킴으로써 신체의 균형을 회복한다. 끝으로 마사지볼을 사용해 관자놀이, 승모근, 견갑골, 척추기립근, 엉덩이, 종아리, 발바닥을 마사지함으로써 뭉쳐 있는 근육을 풀어주고 혈액순환을 증진시킨다.
이 과정이 끝나면 몸에 대한 인식과 오감이 뚜렷해진다. 몸을 움직일 때마다 뼈, 근육, 피부의 움직임을 정확히 파악할 수 있는데, 이 과정에서 몸 안의 어떤 기운이 하나로 통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또한 인센스 스틱의 오묘한 향과 내부순환로를 달리는 자동차 소리, 러그의 보드라운 감촉 등이 보다 명료하게 인식되며 나를 둘러싼 세계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진다.
이후에는 자아의 법칙, 존재의 법칙, 양심의 법칙에 대한 법문을 외우며 마음의 중심을 하나로 모으는 데 집중한다. 그리고 러그 한 가운데 있는 좌식 의자에 앉아 편안한 마음으로 들어오고 나가는 호흡의 흐름을 지켜본다. 처음에는 에고의 온갖 목소리로 인해 호흡에 집중하기가 어려웠다. 이런 저런 걱정과 불평불만을 쏟아내는 에고의 목소리는 결코 멈추는 법이 없었다. 몸은 조용한 거실에 있지만 마음은 떠들썩한 시장통에 있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초창기에는 휴식은 커녕 쏟아지는 에고의 무게에 짖눌려 오히려 마음의 체력을 소진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다 어느날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서 '나도 잘 몰라! 모른다고! 몰라!'라고 외쳤다. 그랬더니 말도 안 되게 시끄러운 목소리들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에고의 목소리를 다루는 방법을 알게 된 것이다. 그 다음부터는 딴 소리가 나오려고 할 때면 그 즉시 '몰라!'를 외쳤다. 그러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마음이 고요해지고, 호흡에 집중할 수 있게 됐다.
호흡은 생각보다 어렵지 않았다. 배꼽 아래에 있는 단전에 정신을 집중하고, 들숨과 날숨의 길이를 맞추는 데 집중하다보면 금새 나의 존재를 잊어버리는 '무아의 상태'에 빠졌다. 내가 누구인지 몇 살인지 무슨 일을 하는지는 하나도 중요하지 않았다. 그저 호흡하며 존재하는 그 자체에 만족하는 상태가 이어졌다. 이 상태를 선정 혹은 깨어있는 상태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나는 존재에 만족하는 평화로운 마음 상태에서 진정한 의미의 휴식을 취할 수 있었다. 또한 명상은 정신적인 휴식뿐만 아니라 신체적인 휴식도 제공했다. 예로부터 단전호흡은 양생법이라고 해서 호흡을 통해 에너지를 모으고 이를 온몸에 순환시키는 데 활용되어 왔다. 단전에 쌓인 에너지는 회음부에서 시작해 척추를 타고 올라가 가슴과 목 그리고 미간과 정수리에 이르는 에너지 센터를 돌며 순환한다. 쉽게 말해서 '기가 산다'는 의미다. 나는 명상을 통해 그토록 찾아해맸던 몸과 마음의 평화에 도달할 수 있게 되었다.
사실 돌이켜보면 허무함은 성취의 수준에 따라 크고 작게 찾아오며 늘 나와 함께 있었다. 하지만 문제는 즐거움을 상환(?)하는 과정이 허무함을 달래는 과정이라는 것을 몰랐다는 점과 허무함을 다루는 것이 그렇게 호락호락한 일이 아니었다는 점이었다. 허무함은 나로 하여금 단순한 쾌락의 충족이 아니라, 몸과 마음의 건강을 근본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방법을 요구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수년에 걸친 시행착오 끝에 명상이라는 방법을 찾았고, 이를 통해 구원받을 수 있었다. 나는 위기는 기회가 되고, 행운은 고난의 탈을 쓰고 찾아오며, 포기하지 않는 이상 실패는 배움의 과정일 뿐이라는 말을 다시금 되뇌였다. 여행자들의 몸과 마음에 언제나 평안이 함께 하기를.
[바로가기] '허무함의 정체'에서 이어지는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