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년간 휴가도 모르고 살아오다 어느 날 문득, 아무런 계획도 없이 제주도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혼자 떠난 여행에서 특별한 걸 기대한 건 아니었다. 단지 무한히 늘어선 큐브처럼 답답한 일상을 잠시라도 벗어나고 싶었던 것이다. 하지만 수목원과 휴양림 그리고 올레길로 채워진 일정 속에서 나는 뜻밖에도 일종의 계시를 받았다. 그것은 나아갈 방향을 잃고 어둠을 헤매던 내게 새로운 미래를 보여주는 한 줄기 빛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공부를 잘하는 학생들만 입시컨설팅을 받는다고 생각하는데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최상위권부터 상위권 그리고 중하위권까지 다양한 성적대의 학생들이 현재 자신의 조건에서 갈 수 있는 최대치의 대학을 찾고, 좀 더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입시컨설턴트를 찾는다.
경험상 최상위권, 상위권, 중하위권의 비율은 3:5:2 수준이며 대체로 SKY 혹은 TOP7에 조금 못 미치는 상위권 학생들이 입시컨설팅의 주요 고객이 된다. 나는 이들에게 학생부종합전형의 다양한 공략법을 제시했고, 다행히 이러한 방법은 효과가 커 많은 학생들이 원하는 대학에 합격할 수 있었다.
그리고 10년의 경험이 쌓인 지금은 컨설팅으로 커버할 수 있는 영역이 광범위해지고, 방법론 또한 고도로 정교해지면서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수준까지 진화했다. 
경력기술서에서 밝힌 것처럼 나는 지난 10년 동안 진로와 진학, 수시와 정시 그리고 고입과 편입을 포괄하는 대학입시 전 분야의 유기적이고 종합적인 컨설팅 역량을 쌓아왔다. 학생과 학부모의 니즈에 민첩하게 대응하며 내게 부족한 부분을 채워가는 과정은 곧 학생의 잠재력을 실현하는 과정이었다. 치열하고 고된 과정이었지만 매년 대학입시를 넘어선 더 큰 뜻에 조금씩 가까워지고 있다는 생각에 힘든 줄 몰랐다. 그 뜻은 '학생들의 자기실현을 돕는 사람이 되겠다'는 비전이었다.
실제로 입시컨설팅을 통해 자신의 미래를 구체적으로 생각해 볼 수 있었다거나 선생님 덕분에 합격했다는 말을 듣게 되면, 내가 추구하는 이상과 행동으로 드러나는 현실이 조화롭게 균형을 이루고 있는 것 같아 스스로 자랑스러웠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건 드문 일이었다. 대부분의 학생들에게 나는 돈을 주고 고용한 용병일뿐이었다.
열심히 만든 컨설팅 보고서나 종합리포트를 받고도 감사하다는 말 한 마디 없는 건 예삿일이었고, 말도 안 되는 트집으로 이미 다 진행된 컨설팅 수강료를 환불해가기도 했다. 사업이 어느 정도 자리잡은 후에는 학생을 걸러받으며 이런 일이 줄어들긴 했지만, 합격의 영광은 자신이 모두 가져가고 불합격의 책임은 모두 나에게 돌리는 건 그대로였다.
이건 학생의 성적, 성별, 지역과 상관없이 매년 반복되는 현상이었다. 그렇게 나는 얼마 되지 않는 돈을 받고 영혼을 파는 일에 점차 염증을 느끼기 시작했다. 그러다 작년 이맘때쯤에는 너무 지긋지긋한 나머지 어디론가 떠나지 않고는 도저히 참기 어려운 수준까지 도달하고 말았다. 
사실 입시컨설팅이라고 해서 여타의 서비스 업종과 다를 건 없다. 공급자는 소비자의 문제를 해결하고 소비자는 이에 대한 대가로 돈을 지불하면 그만인 것이다.
이러한 생각은 무언가에 늘 찌들어있는 표정을 하고 있던 J원장의 염세적 태도의 근간이 되고 있었다.
내가 대치동에서 처음 만난 J원장은 학생에게 큰 정 주지 말고 하는 일에만 집중해야 이 업계에서 성공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나는 J원장이 무언가를 가르칠 자격이 없는 형편 없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가급적 거리를 두고 데면데면한 사이로 지냈다. 하지만 어느 순간 내 안의 J원장을 마주하면서 그때의 그가 어떤 심정으로 한 말이었는지 충분히 이해할 수 있게 됐다. J원장 또한 가르치고 배우는 사제관계와 돈의 지불과 평가에 따른 갑을관계 사이에서 정체성의 혼란을 경험했을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사교육의 특성상 결코 피할 수 없는 일종의 직업병이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따로 있었는데, 그것은 방향감각의 상실이었다. 지금까지의 행동을 돌이켜보니 '학생들의 자기실현을 돕는 사람이 되겠다'는 비전에는 '충분한 돈을 지불한'이라는 말이 생략되어 있는 것이 분명했다.
내 능력을 발휘해 돈을 버는 것이 불법도 아니고, 다른 사람들도 다 그렇게 사는데 뭐가 문제냐고 반문하는 내게 자아 이상은 조용히 답했다. 너는 지금보다 더 나아져야 한다고, 더 많은 사람들을 도와야 한다고, 세상에는 너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훨씬 많다고 얘기했다.
나는 무거운 요청에 짖눌렸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한참을 망설였다. 그러다 불현듯 제주도행 비행기표를 끊었다. 어딘가 탁 트인 곳을 계속해서 걷고 싶은 기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