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냉혹한 진실보다 달콤한 거짓을 더 좋아한다. 입시분야의 대표적인 환상은 터무니 없이 낮은 성적의 학생이 전설적인 입시컨설턴트를 만나 명문대에 합격하는 것이다. 재수생인 A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는 본인의 실력으로 절대 갈 수 없는 대학만을 고집하고 있었다. 일확천금을 꿈꾸고 있는 A의 눈은 갈망으로 반짝였고 굳게 닫힌 귀 앞에서 나의 조언은 힘을 잃었다. 무엇이 이토록 그의 마음을 강렬하게 사로잡고 있는 것일까. 나는 똑같은 눈빛을 하고 있던 16년 전의 내게 질문을 던졌다.
재수생 A와의 만남은 2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A는 수도권에서 조금 떨어진 지역의 일반고를 졸업한 학생으로 최종 내신 2점 중반에 비교적 완성도 높은 비교과를 갖고 있는 친구였다. 하지만 A는 전년도 수시 모집에서 모두 불합격하고 수능에서도 평균 4등급의 성적을 받았다. 도무지 자신의 대입 결과를 받아들일 수 없었던 A는 정시 모집에 지원조차 하지 않았고, 부모님을 설득해 기숙학원에서 재수를 시작했다.
하지만 성적은 생각보다 잘 오르지 않았다.
해가 바뀌고 치른 3월 모의고사에서 작년보다 낮은 성적을 받아 절치부심하며 노력했지만, 수능 성적의 바로미터(barometer)가 되는 6월 모의고사에서 3월 보다 더 낮은 성적을 받고 말았다. 이후 고민 끝에 수시 모집에 다시 도전하기로 결심했고 작년 합격생의 소개로 나와 인연이 닿았다.
기숙학원에 있어 연락이 어려운 A를 대신해 상담 전 어머님과 전화로 긴 시간 대화를 나눴다. 어머님께서는 A가 자존심이 매우 강한 학생이라는 말로 이야기를 시작하셨다. A는 어릴 때부터 공부를 곧잘 했고 학급 반장을 놓친 적이 없었으며 학교 선생님들로부터 사랑받는 학생이었다. 그런데 고등학교에 입학할 무렵 사춘기가 찾아왔고 생각했던 것만큼 성적이 잘 나오지 않아 크게 스트레스를 받았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교생활에 충실하며 나름의 성과를 만들었으나, 원서를 쓸 때 일부 선생님들과의 충돌로 입시전략이 엉망이 되었다는 말을 덧붙이셨다. 나는 수도 없이 들었던 '유망주의 안타까운 실패담'을 다시 한 번 곱씹으며 A의 학생부와 자기소개서 그리고 지원 대학 리스트를 전해받았다. 그리고 이내 A가 왜 수시로 쓴 6개 대학에서 전부 떨어졌는지 알 수 있었다. 
A는 큰 키에 단정한 용모 그리고 검은색 뿔테 안경 너머의 고요한 두 눈이 인상적인 학생이었다. 나의 질문에 차분하고 조리 있게 답하는 A를 보며 어머님의 말씀이 사실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멈추지 않고 흐르는 땀, 계속해서 고쳐쓰는 안경, 그리고 쉴 새 없이 까딱이는 손가락은 A가 이 자리를 불편하게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A의 바디랭귀지는 A가 컨설팅을 받는 이유가 자기 수준에 맞는 대학을 알아보기 위함이 아니라는 것을 말하고 있었다. A는 자신이 가고 싶은 대학을 바꿀 생각이 조금도 없었다. A가 원하는 것은 명문대 합격에 조금이라도 더 가까워질 수 있는 '비밀스러운 기술'이었다.
A같은 학생을 처음 만나본 건 아니었다. 하지만 A는 좀 더 특별한 구석이 있었는데 그것은 A의 쇠심줄 같은 고집이었다. 
A의 세상에서 대학은 흔히 SKY로 통용되는 세 개 대학뿐이었다. SKY에 입학하기 위해 재수는 물론 삼수까지 하겠다고 말하는 A의 갈망을 이해할 수 없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문제는 본인의 실력에 대한 자기객관화가 부족했다는 점이다. 여기서 말하는 자기객관화란 1학년 때부터 지속적으로 교과 내신과 모의고사 성적을 모니터링하며 갈 수 있는 대학과 가고 싶은 대학 간의 차이를 줄여가는 과정을 의미한다. 입시에는 합격과 불합격이 있고 합격을 위해 필요한 점수가 엄연히 존재한다. 그렇기 때문에 학생들은 해당 점수에 따라 스스로를 끊임없이 점검해야 하는데, A는 이러한 과정이 전무했던 것이다. 그 결과 '내가 생각하는 나'와 '세상이 평가하는 나' 사이에 큰 괴리가 생겼고, 수시 원서 접수를 할 때가 되어서야 비로소 인식하게 된 냉정한 현실을 A는 결코 받아들일 수 없었던 것이다.
보통 교육특구나 지방 명문고에서는 학교 자체적으로 수년에 걸쳐 축적한 졸업생 입시 데이터가 있다. 그렇기 때문에 갈 수 있는 대학과 가고 싶은 대학 간의 차이가 적은 편이고 학생 스스로도 이를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일부 사립고교를 제외한 대다수의 일반고에서는 입시 데이터는 고사하고 순환보직으로 인해 진학지도를 담당하는 선생님이 계속 바뀌기 때문에 전문성과 노하우를 축적할 수 있는 기회가 부족하다.
공교육 차원의 합불 데이터가 존재하지만 이는 고등학교 유형 및 수준에 대한 분석이 빠져 있어 개별 학교와 학생에게 적용하는 데 어려움이 많다.
이러한 이유로 상당수의 학생들이 3학년이 될 때까지 이렇다 할 입시전략 없이 학창시절을 보내고, 3학년 1학기가 끝나고 나서도 개별화된 진학지도를 경험하지 못한다. 그래서 수시 원서 접수를 얼마 앞두고 사설 업체의 데이터를 활용해 부랴부랴 지원 대학을 결정하는데, 이 또한 모집단이 해당 플랫폼의 사용자로 제한되고 전체 합격자의 50분위 혹은 80분위 값을 토대로 추정하는 방식이라 적합성과 정밀도가 떨어진다.
나는 자기객관화를 위한 진학상담이 A에게 충분히 제공되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학교에 재학 중일 때 지원가능한 대학을 알아보지 않았냐는 질문을 던졌고, 나의 질문에 A는 원서를 쓰기 전 담임 선생님께서 ’대입상담 프로그램’을 돌려 추천 대학을 선정해주셨다고 답했다. 학교에서 추천해준 대학은 몇몇 학교를 제외하면 크게 이상하지 않았다. 그래서 왜 이 대학들을 쓰지 않았냐고 물어보았는데 돌아오는 대답이 기가 막혔다.
A는 가볍게 한숨을 내쉬며 "이런 대학을 다니고 싶지 않다"고 짧게 말했다.
미세하게 떨리는 A의 목소리에서 '어떻게 나한테 이런 대학을 추천할 수 있느냐'라는 속뜻이 느껴졌다. A에게 과분한 대학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나는 그제서야 A에게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진학지도의 적합성과 정밀도는 중요하지 않았다. A에게 중요한 건 본인이 갖고 있는 '자기 개념(Self Concept)'에 걸맞은 대학이었다. A는 진심으로 자기 자신을 SKY에 충분한 인재라고 생각하고 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