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격의 경험은 내게 많은 것을 남겼다. 나는 10대 후반부터 나를 괴롭혀왔던 자격지심과 열등감을 단번에 벗어던지고, 그 빈자리를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채울 수 있었다. 도대체 왜 나만 이런 고통을 겪어야 하냐며 소리치고 괴로워했던 무수한 시간들이 이제는 웃으면서 말할 수 있는 추억거리가 된 것이다. 
또한 아버지와의 관계가 몰라보게 좋아졌다. 가장 먼저 합격소식을 전하는 수화기 너머로 3초 간의 정적이 이어졌다. 이어서 축하한다는 말과 함께 등록금의 납부기일을 묻는 아버지의 목소리가 미세하게 떨렸다. 베이비부머 세대의 많은 어른들이 그러하듯 아버지 또한 감정표현이 거의 없는 분이었지만 나는 아버지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었다. 젊었을 적 아버지는 직장에 다니면서 방송통신대 학위를 따기 위해 3학년 때까지 공부하셨다고 한다. 그때 아버지의 전공이 행정학이었다. 나는 평생 전자부품 제조업에 종사해오신 아버지가 왜 행정학과를 선택했는지는 잘 몰랐지만, 아버지의 못다한 꿈을 이뤄드린 것 같아 더욱 기뻤다.
동시에 나는 학문의 길을 진지하게 고려하기 시작했다.
학부 3학년 수준의 실력이었지만 전공필기를 공부하면서 폭넓고 깊이 있는 이론적 틀을 갖춘 문제해결중심의 행정가라는 꿈을 갖게 됐기 때문이다. 이를 통해 행정학이라는 학문적 틀 속에서, 공공기관이라는 제도적인 영역 안에서 대한민국의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고 나아가 이를 실현시킬 수 있는 정책을 만들겠다고 결심했다.
한편, 많은 사람들은 내가 어떻게 고려대와 연세대에 동시에 합격할 수 있었는지 궁금해했다. 이건 나 스스로도 쉽게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학점은행제 행정학사를 따기 위해 미련 없이 사범대를 자퇴하고 될지 안 될지도 모르는 시험을 위해 코피를 쏟아가며 몇 날 며칠을 공부하는 모습은 무언가에 미쳐있다는 말로 밖에는 설명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합격비결로 명문대 간판의 가치에 주목하곤 했다. 대학의 서열이 위계화되어 있고 이에 따라 연구와 취업 그리고 창업 등 다양한 사회적 기회가 차등적으로 분배되는 현실에서 명문대 졸업장이 갖는 편익(benefit)은 편입의 중요한 이유가 될 수 있었다. 어떤 사람은 명문대를 졸업하면 출신 대학 때문에 심리적으로 위축될 일이 없고 자신감을 가질 수 있기 때문에 좋을 것이라고 했고, 또 다른 사람은 사회, 경제, 문화적으로 비슷한 수준의 사람들과 교류하며 인적 네트워크를 형성할 수 있기 때문에 장기적으로 봤을 때도 명문대가 최고라고 했다. 모두 당연히 맞는 말이었다.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었다.
수험생활은 언제 끝날지 모르는 어두운 터널을 불빛 하나 없이 걷는 것과 같았다. 걸어가는 와중에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기도 했고 질척이는 흙탕물에 빠지기도 했다. 동시에 이 길이 맞는지, 언제 끝나는지, 지금이라도 시작했던 곳으로 다시 돌아가야 하는 것은 아닌지 자기의심이 끊이지 않고 이어졌다. 수험생활은 책상 앞에 앉아 팔자 좋게 공부하는 것처럼 보여도 몸과 마음의 건강을 그 어떤 일보다 빠르게 악화시킬 수 있었던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명문대에 합격하면 얻게 되는 것들은 저 멀리 아주 작은 점으로 보이는 출구보다 더 막연하고 비현실적이었다. 오히려 세속적인 접근은 끊임없는 비교를 만들었고 비교는 나의 영혼을 한없이 좀먹을 뿐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불안한 오늘을 버틸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가장 가까이에 있고 구체적이며 실제로 존재하는 것에서 찾아야 했다. 나는 '진로계획'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었다.
결국 내가 어떤 사람인지 깨닫는 것이 가장 중요했다. 행정을 비롯해 역사, 철학, 문학, 심리, 교육, 사회 분야의 다양한 책을 읽고 사색하고 글을 쓰며, 나는 스스로를 치유하고(counsel), 찾고(find), 세우고(build)는 연습을 반복했다. 이 과정은 외부로 향해 있던 관심사를 내면으로 돌려 어두운 터널을 밝힐 수 있는 불빛을 스스로에게서 찾는 일이었다. 나는 이를 통해 내가 하고 싶고(will), 잘 할 수 있으며(can), 해야만 하는 일(calling)을 찾을 수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모든 사람들의 자기실현을 돕는 것, 그리고 그러한 세상을 만드는 것'이라는 비전이었다. 이는 보다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해왔던 지난 날을 관통하는 메시지임과 동시에 앞으로의 내 삶을 이끌어갈 하나의 기준이 되었고, 고된 수험생활은 물론 현재까지도 중요한 판단기준으로 의지하는 내 마음 속 등대로 자리잡았다. 
편입에 대한 시각도 마찬가지였다. 내게 있어 편입은 그 자체가 목적이라기보다는 비전을 실천하기 위해 거쳐가는 하나의 과정이었다. 즉, 비전을 중심으로 수립된 세부 목표를 이미 달성했다고 생각하고, 미래의 시점에서 현재에 가깝게 한 단계씩 내려오면서 그때마다 무엇을 해야하는지 거꾸로 생각하는 과정 중에 편입이 있었던 것이다.
구체적인 단계는 다음과 같다. 교육의 혁신을 통한 사회의 혁신은 교육과 관련된 사회 전 분야의 협력과 지원이 필수적이다.
그렇다면 사회체제를 움직이는 원리에 대해 알아야 내 꿈을 이룰 수 있다.
이를 배울 수 있는 학문은 정부를 비롯한 공공기관의 작동원리와 운영의 실제를 연구하는 행정학이다.
행정학을 제대로 배우기 위해서는 훌륭한 스승과 뛰어난 동료들이 있어야 한다.
국내 학부과정에서 행정학을 배울 수 있는 곳 중 가장 명성이 높은 곳은 고려대 행정학과와 연세대 행정학과다.
그렇다면 이 두 곳 중 한 곳에서 수학함으로써 폭넓고 깊이 있는 이론적 틀을 갖춘 문제해결 중심의 행정가로 성장하고 싶다.
수능, 편입, 대학원 중 나의 강점인 영어를 최대한 활용할 수 있는 건 편입이다.
편입학에 합격하기 위해서는 3학년 수준의 전공지식이 필수다.
합격할 수 있는 수준의 실력을 쌓기 위해 최선을 다하자.
이러한 목표중심의 하향식 사고는 장기적인 관점에서 인생의 큰 방향을 설정해주기 때문에 나의 모든 판단과 행동에 확고한 근거를 제공한다는 장점이 있다. 즉, 내가 특정 시점(when)에 어떤 일(what)을 왜(why)하는지 명확히 알고 있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 나는 내가 살아가는 이유를 보다 명확히 깨닫고 의미가 충만한 삶을 살 수 있게 되었다.
결국 합격을 만드는 건 간절한 꿈이었다. 단, 이때 말하는 꿈은 막연하고 두루뭉실한 생각이 아니라 깊은 고민과 성찰 그리고 체계적인 계획과 꾸준한 노력으로 뒷받침되는 실현가능한 꿈을 의미한다. 이와 같은 꿈을 갖고 있는 사람은 스스로를 등불삼아 어두운 터널을 헤쳐나올 수 있으며 세속의 함정에 빠지지 않고 자신만의 의미를 추구하는 삶을 살아간다. 그리고 이러한 삶만이 자기 자신을 'one of them'이 아닌 'one of a kind'로 만들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