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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스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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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젝트 빅스쿨

작성일
2021/10/03 21:17
생성일
2022/08/01 01:29
저자
Un Ryong Baek
Un Ryong Baek
키워드
#사려니숲길, #빅스쿨, #왕초보스쿨
분류
마음챙김
리더십
그렇게 갑작스러운 나홀로 제주도 여행이 시작됐다. 비행기에서 내리기 전까지만 해도 머릿속에 생각이 떠나지 않아 여행을 괜히 왔나 싶었다. 그런데 의외로 제주공항의 야자수를 보자마자 내가 여행을 '진짜' 왔다는 사실이 실감나면서 갑자기 신이 나기 시작했다. 무언가 새로운 걸 시도해보고 싶었던 나는 자동차 대신 스쿠터를 타보기로 했다. 스쿠터가 조금 위험하긴 했지만 일행이 있을 때는 좀처럼 시도해볼 수 없는 일이었기 때문에 과감히 도전해보았다. 그리고 스쿠터를 타고 돌아다닌 5일 간의 시간은 더할 나위 없이 행복했다. 청량한 가을 하늘부터 깨끗한 제주바다, 우뚝선 한라산, 고요한 휴양림, 멋드러진 올레길, 그리고 아름다운 동백꽃과 갈대밭까지 제주의 품 안에서 나는 몇 년 만의 자유를 만끽할 수 있었다. 특히 제주도의 해안도로와 한라산 1100도로를 가로지르는 순간은 온몸으로 제주도를 느낄 수 있었던 최고의 경험이었다.
그래도 마음 한 구석에는 더 나은 삶에 대한 자아 이상의 요청이 남아 있었다. 나는 할수만 있다면 여행이 끝날 때까지 못 들은 체하고 그저 먹고 마시면서 에고를 즐겁게 해줄 생각이었다. 자아 이상도 이 마음을 알았는지 여행 3일차까지는 별 말이 없었다. 그러다 4일차 오전, 조천읍에 자리한 사려니숲길을 걷는 내게 조용히 말을 걸어왔다. 이른 아침의 안개가 짙게 깔린 빼곡한 삼나무 숲은 몽환적인 분위기를 자아내며 깊은 내면으로 나를 이끌었다. 요즘 어떻게 지내냐는 질문으로 시작된 대화는 과거와 현재, 인물과 사건, 생각과 감정을 종횡무진하며 트래킹 내내 이어졌다. 그 사이 코를 간지럽히는 흙냄새와 풀냄새 그리고 곧게 뻗은 나뭇가지 사이로 내리쬐는 햇빛은 내 마음을 부드럽게 어루만지며 새로운 기운을 불어넣고 있었다. 그렇게 2시간의 시간이 지나 다시 입구로 나온 나는 왜 제주도민들이 사려니숲을 신성한 숲이라고 부르는지 알 수 있었다. 그곳은 에고의 경계 너머를 보여주는 영적(spiritual)인 공간이었다.
사려니숲에서 깨달은 건 지난 시간의 의미와 앞으로 나아갈 길이었다. 20대 중반까지의 혹독한 진로탐색과 이후 진로진학 분야에서의 10년은 내가 전문가로 거듭나기 위한 시간이었다. 이 과정에서 나는 소중한 인연들을 만나 부족한 부분을 채울 수 있는 기회를 얻었는데, 돌이켜 생각해보니 그건 때와 장소가 절묘한 너무나 기적같은 일이었다. 또한 최근 들어 자주 느꼈던 부정적인 감정은 새로운 변화가 필요하다는 신호이자 인생의 다음 단계로 나아가야 함을 알려주는 메시지였다. 즉, 진로진학 분야의 인정받는 전문가로 성장하는 것이 이번 단계를 클리어하기 위한 미션이었던 것이다. 나는 인생의 신비한 가르침에 큰 감사함을 느꼈다.
사려니숲은 앞으로의 10년에 대해서도 대략적인 모습을 알려주었다. 그것은 세 단계로 구성된 큰 그림이었다. 첫째, 지금까지 쌓아온 진로진학 분야의 전문지식과 관련 기술 그리고 실무노하우를 하나의 방법론으로 체계화한다. 둘째, 체계화된 방법론을 토대로 공교육과 사교육의 진로진학 컨설팅 전문성 향상에 기여한다. 셋째, 컨설팅 노하우와 IT기술의 결합을 통해 개인맞춤 진로진학 콘텐츠 플랫폼을 구축한다. 이때 각 단계마다 덧붙이는 구체적인 근거와 실천방안은 놀랄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나는 흥청망청 놀고 있는 에고를 대신해 부지런히 문제를 해결해준 무의식에 감사하며 새로운 계획에 '프로젝트 빅스쿨(BigSchool)'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내 마음 속에 새로운 북극성이 반짝였다.
여행에서 돌아온 나는 교육대학원에 다시 복학하기로 결심했다. 2개 학기를 다니고 사업상의 이후로 1년 반을 휴학한 상태였던 나는 사실상 학교를 그만두는 수순을 밟고 있었다. 그랬던 내가 결국 돌아올 수 있었던 이유는 컨설팅 방법론이라는 것이 단순히 지식을 집대성하는 수준 이상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구체적인 이론적 근거와 체계적인 연구방법론을 토대로 '검증하고 공인하고 공표하는 과정'이 수반될 때 보다 신뢰할 수 있는 연구로 인정받을 수 있기 때문에 석사학위라는 공식문서로 해당 내용을 정리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그래서 상반기에 복학해 진로진학상담과 관련된 선행연구를 꼼꼼히 분석했고, 4학기에 시작된 연구지도를 통해 '실무 중심의 진로진학 컨설팅 프로그램 개발에 대한 연구'라는 석사논문 연구주제를 확정할 수 있었다.
한편 올해 6월에는 제58대 교육대학원 총학생회장 선거에 출마해 총학생회장으로 당선되며 원우들을 위해 봉사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됐다. '원우들의 자기실현을 돕는 실력 있는 총학생회'를 비전으로 굿티처스 선본이 내세운 공약들 중 가장 대표적인 건 '진로진학 왕초보스쿨'이었다. 이는 현직에서 학생들의 진로진학지도에 어려움을 겪고 있거나 앞으로 교직에 진출할 예비교사들의 진로진학 상담역량을 강화시키기 위한 프로그램으로 우리가 당선되는데 큰 역할을 했다. 현재 10월 중에 주1회 4주로 구성된 왕초보스쿨의 첫 번째 기수를 운영할 계획을 갖고 있다. 관련자료를 꼼꼼히 준비해 내가 알고 있는 모든 것을 빠짐없이 전달할 예정이다. 많은 원우들이 진로진학지도에 자신감을 가질 수 있는 기회가 된다면 큰 보람이 될 것 같다.
지금 나는 또 다시 제주도다. 작년과 달리 올해는 숙제가 없다. 그저 한적한 마음으로 제주의 푸른 바다를 감상할 뿐이다. 내가 가야할 길을 알고, 그 길을 열심히 걷고 있고, 계속 걷다보면 결국 목적지에 도달한다는 것. 이것이 바로 내 마음이 평온한 이유일 것이다. 오후에는 사려니숲에 다시 가봐야겠다. 일 년 만에 만난 내게 잘하고 있다고 칭찬을 해줄지도 모른다. 제주도는 내게 참 특별한 곳이다.
[바로가기] '직업병'에서 이어지는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