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이란 고난과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한 답을 자기 자신으로부터 찾는 사람이다. 소년은 내면 깊숙히 내려갈수록 그동안 애써 외면해왔던 자신의 어둠을 필연적으로 마주하게 된다. 피할 수 없는 진실을 받아들이는 과정을 통해 소년은 미지의 세계를 탐험하고 분할된 세상을 통합하며 스스로의 주인으로 거듭난다. 에고의 통치자로서 그는 그토록 꿈꿔왔던 성숙한 어른이 된다.
수 십 년간, 보란 듯이 미쳐 날뛰며 나를 괴롭혀왔던 내 안의 목소리. 끊임없는 질문으로, 격앙된 흥분으로, 걷잡을 수 없는 분노로 가득했던 내 머릿속. 오랜 시간 나는 목소리를 알지 못했고, 그 존재를 알게 되었을 때부터는 감당할 수 없었다. 그러는 사이 내 인생에선 같은 문제가 계속해서 반복되었다. 주변 상황과 사람만 달라지고 문제는 언제나 똑같았다. 나는 또다시 사악하고 이기적인 인간이 되고 말았다. 
목소리는 나를 사납게 비난했고 죄의 대가로 이 세상에서 가장 절망스러운 곳에 나를 가두었다. 나는 춥고 냄새나는 감옥에서 끔찍한 죄책감을 곱씹었다. 내 마음 속엔 사람에 대한 분노와 세상에 대한 증오심이 넘쳐흘렀다. 악은 쌓이고 쌓여 성을 이루었고 나는 철저히 고립되었다. 아무런 기대도 아무런 의욕도 생기지 않았다. 나는 그저 수심을 알 수 없는 절망의 심해로 끝없이 추락했다. 반짝이는 모든 것은 사라졌고 어두운 모든 것은 남았다.
한 평 남짓한 작은 독방. 사면이 거울로 된 그곳에서 속일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한 발자국도 도망칠 수 없는 진실의 공간에서 나는 목소리의 실체를 마주해야만 했다. 괴물이었다. 거울에 비친 그는 나를 죽일 듯 노려보며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눈은 터진 실핏줄이 뒤엉켜 핏빛으로 물들었고, 온몸은 털이 곤두서 살기로 가득했다. 그는 언제나 온 힘을 다해 외면했던 나의 어둠이었다. 괴기한 그의 표정은 내게 거짓된 연기를 그만두고 진실을 받아들이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무서웠다.
하지만 더 이상의 진척은 없었다. 내가 다가가면 그는 물러섰고, 그가 다가오면 내가 물러섰다. 우리의 숨바꼭질은 계속되었다. 그동안 그는 마키아벨리로, 기회주의자로, 백수건달로 모습을 바꿔가며 매번 새로운 고통을 선사했다. 내가 무언가 열심히 하려는 순간 그는 어김없이 나타나 모든 것을 부숴놓고 사라졌다. 마치 가식적인 나를 벌주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 벌은 내가 자신이 있는 곳으로 다시 내려올 때까지 끝나지 않았다. 나는 불편하지만 익숙한 어둠에서 모든 것을 포기하고 울었다.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나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렇게 시간은 흘렀다. 고요한 침묵이 계속되던 어느 날, 낯설지만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건 괴물의 차분한 목소리였다. 그가 처음으로 뱉은 말은 놀랍게도 미안하다는 말이었다. 예상치 못한 의외의 문장에 순간 나는 멍해졌다. 그는 멍한 나의 표정을 뒤로 한 채 자기도 어쩌다 일이 이렇게까지 됐는지 모르겠다며 이야기를 쏟아냈다. 그것은 말의 폭포였다. 머지않아 그는 흐느꼈고 소리쳤고 울부짖었다. 후회와 한탄, 원망과 슬픔, 고통과 분노가 뒤섞인 한의 살풀이였다. 나는 그의 감정에 압도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