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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스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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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을 넘어 빛으로

작성일
2021/12/01 11:30
생성일
2022/08/01 01:29
저자
키워드
#자기치유, #자기통합, #존재감
분류
상담심리
마음챙김
리더십
왜. 괴물의 입에서 가장 많이 나온 단어는 '왜'였다. 왜 나만 이런 일이 생기는가, 왜 나만 실패를 반복하는가, 그리고 왜 나는 행복할 수 없는가. 그는 답을 알 수 없는 온갖 질문에 짓눌렸다. 나는 해줄 수 있는 것이 없었다. 그리고 뭘 해줘야 할지도 몰랐다. 그저 조용히 앉아 모든 이야기를 듣고 있을 뿐이었다. 그렇게 우리는 조금씩 친구가 되었다. 진실로 소통했고 서로를 이해했으며 이제는 공동의 문제가 되어버린 무수한 질문들을 해결하기 위해 함께 노력했다. 연구하고 성찰하고 토론하는 시간이 밤낮으로 이어졌다.
문득 그가 사시나무처럼 몸을 떨었다. 손이 떨리는 게 눈으로 보일 정도였다. 나는 심장박동수가 높아졌고 식은땀이 났다. 별안간 우리는 집채만 한 파도에 휩쓸렸고 그 파도는 무의식의 심해로부터 의식의 해변으로 오래된 기억을 끌어왔다. 두려움, 공포, 그리고 불안의 기억들이었다. 오래된 기억 속 괴물은 상처투성이였고 상처 위에 상처가 쌓여있었다. 장대만 한 대못 여러 개가 괴물의 가슴을 꿰뚫고 있었고 수도꼭지를 틀어놓은 것처럼 피가 쏟아졌다. 그는 목 놓아 울고 있었다.
나는 괴물을 끌어안았다. 그리고 천천히 그의 기억 속으로 들어갔다. 아주 어렵게 대못을 제거하고 조심스럽게 상처를 꿰맸다. 괴물의 탈을 벗은 그는 키가 1m도 안 되는 꼬마였다. 따뜻하고 편안한 곳에 그를 뉘었다. 끊어질 것 같은 숨이 미세하게 이어졌다. 그동안 그가 홀로 겪은 고통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도와달라는 외침을 외면했던 나 자신이 원망스러웠다. 미안하다고 얼마나 힘들었냐고 이제 괜찮다고 안심하라고 목 놓아 울었다. 맞잡은 두 손에 조금씩 온기가 돌았다. 수줍게 웃는 꼬마의 얼굴이 서서히 변했다. 소년이 되고 청년이 되고 어른이 되었다. 지금의 나와 점점 가까워졌다. 나와 그의 얼굴이 하나가 되었다.
나는 절망의 감옥에서 출소했다. 아주 오랜 꿈에서 깨어난 나비가 된 것만 같다. 희미하고 뿌연 안개 길을 지나, 어둡고 축축한 동굴을 건너, 드디어 찬란하게 빛나는 태양 앞에 섰다. 모든 감각이 선명하고 또렷하다. 지저귀는 새소리, 두 뺨을 스치는 산들바람, 싱그러운 초록빛 잎새와 형형색색의 아름다운 꽃. 한 점 얼룩진 곳 없는 깨끗한 마음으로 있는 그대로의 세상에 존재한다. 나는 더 이상 시간을 거스르지도 앞지르지도 않는다. 그저 모든 감각을 열고 오롯이 지금 여기에 존재한다. 살아있음을 느낀다. 살아있는 이 순간이 진실로 행복하다.
[바로가기] (이전글) '괴물의 목소리'에서 이어지는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