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과 인간관계 수준 나아가 조직 수준을 뛰어넘는 관점이 필요한 순간은 언제일까. 아마도 학업이나 취업, 직장 생활 등에서 무언가 자신의 뜻대로 일이 잘 풀리지 않아 어렵고 힘든 상황이 대부분일 것이다. 이런 상황의 한 가운데 놓이게 되면 제아무리 자기성찰을 지속하고 정반합의 대의명분을 추구해도 운명의 미로 속에 갇혀 옴짝달싹 못 하는 처지가 되기 때문이다. 앞으로 나아가지도 뒤로 물러나지도 못하는 답답한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은 지금 겪고 있는 고통의 의미를 곱씹어보거나 이 상황이 언제 어떻게 변해서 어떤 결론으로 이어질지 최대한 파악해보는 것인데, 이를 위해서는 너와 나, 그리고 우리를 초월하는 인간사(人間事)적 관점이 필요하다. 그리고 《주역》은 64괘의 이야기를 통해 길함과 흉함, 얻음과 잃음, 나아감과 물러남이라는 수많은 갈림길을 보여줌으로써 돌맹이처럼 날아오는 운명에 대해 번개 같은 통찰력을 제공한다.
《주역》은 중국의 고대 국가인 주나라 사람들이 만든 ‘변화의 경전(The Canon of Change)’이란 뜻이다. 집필된지 3000년이 넘은 《주역》은 하나라 복희씨, 상나라 문왕 그리고 주나라 주공이라는 위대한 인물이 세 시대에 걸쳐 편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주역》은 세상이 그늘(음)과 볕(양)이라는 두 가지 힘으로 이루어졌다고 보았고 이를 가운데가 터진 가로 막대와 터지지 않고 이어진 가로 막대로 표현했다. 전자는 그늘 효라 부르며 여성적이고 내향적인 것을 상징하고 후자는 볕 효라고 부르며 남성적이고 외향적인 것을 상징한다. 《주역》은 인간이 대자연 속에서 살아가는 것과 인간의 생애가 같다고 보았다. 그래서 그늘 효와 볕 효를 세 번 겹쳐 하늘, 땅, 물, 불을 표현하고, 하늘, 땅, 물, 불을 또다시 음양의 특징으로 구분해 하늘(양)과 바람(음), 산(양)과 땅(음), 물(양)과 연못(음), 우레(양)와 불(음)을 상징하는 8괘를 만들었다. 이후 여덟 가지 자연물을 위에 하나(상괘), 아래에 하나(하괘) 배치함으로써 인생에서 맞닥뜨릴 수 있는 64가지 상황을 표현한다.
《주역》의 예순 네 가지 상황은 상반상성(相反相成)과 물극필반(物極必反)의 원리를 따른다.
상반상성이란 음과 양, 남자와 여자, 암컷과 수컷 등 대립되고 어긋나는 상반된 성질의 두 힘이 서로를 살게 하고 이루어준다는 뜻이다. 노자는 《도덕경》에서 이를 “유와 무는 서로 살게 해주고, 어려움과 쉬움은 서로를 이뤄주며, 길고 짧음은 서로 비교하고, 높은과 낮음은 서로 기울며, 음과 양은 서로 조화를 이루고, 앞과 뒤는 서로 따르니, 이것이 세계의 항상 그러한 모습이다”라고 설명했다. 즉, 우주만물을 이루는 근본원리가 서로 다른 것에 있다는 통찰이 바로 상반상성이다.
물극필반은 이러한 모순되고 대립되는 쌍방이 극한에 다다르면 반드시 반대편으로 진화한다는 뜻으로 우주만물의 모든 것이 변화를 피할 수 없다는 걸 보여준다. 《주역》에서는 그늘과 볕의 운동을 의미하는 변효로 이러한 물극필반의 원리를 표현한다. 그늘은 이제 막 그늘이 된 젊은 그늘과 힘이 점점 강해지다 마침내 쇠하고 있는 늙은 그늘로 구분하고, 볕도 마찬가지로 젊은 볕과 늙은 볕으로 나눈다. 그래서 주역점을 통해 최초에 얻게 된 괘를 본괘라고 하고 변효로 인해 음양이 바뀐 후 얻게 된 괘를 지괘라고 구분해 상황의 변화를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주역》의 64괘 중 가장 대표적인 괘는 첫 번째 괘인 ‘건괘(乾卦)’다. 건괘는 하늘을 위아래도 두 번 포갠 모양으로 억센 용의 기질을 가진 군자가 잠룡의 시기를 거쳐 비룡으로 도약하는 과정을 6가지의 모습으로 그리고 있다. 건괘는 6효의 이야기를 통해 군자로 하여금 스스로의 힘으로 모든 난관을 헤쳐갈 수 있도록 계속해서 강해질 것을 주문하고 있으며 동시에 말과 행동을 끊임없이 반성하고 성찰함으로써 다른 사람들을 헤아리며 함께 갈 것을 요구한다. 이는 세상을 밝히는 큰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군자가 자신의 강인함만을 과신하지 말고 더 큰 사람의 도움을 얻어야 하며 각 성장 단계에 따라 충분한 역량을 쌓아야 함을 보여준다. 또한 마지막에는 물극필반의 원리에 따라 너무 높이 올라가면 후회할 일이 생길 수 있다는 것을 강조함으로써 조금 부족해도 만족할 수 있어야 함을 일러주고 있다.
짧은 식견으로 이해한 《주역》은 인간이 경험할 수 있는 거의 모든 인생사(人間事)와 인간의 마음가짐과 행동에 따른 상황 변화를 매우 구체적인 이야기로 제시함으로써 인생을 이해하고 운명을 개척할 수 있는 생각의 틀(frame)을 전해주는 책이다. 이때 《주역》은 고민하고 있는 상황을 새로운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는 낯선 틀을 보여줌으로써 기존의 완고한 사고방식이나 자기합리화의 습관을 깰 수 있게 도와준다. 또한 운명에 대한 결정론적 선고를 내림으로써 인간의 능동성을 배체하는 신탁과 달리, 인간의 마음가짐과 행동의 변화에 따른 결과를 조건문의 형태로 다양하게 보여줌으로써 인간의 주체성을 발휘하고 책임의식을 키울 수 있도록 격려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주역》은 한 차원 높은 수준에서 전체를 조망하는 메타인지를 개인, 인간관계, 조직, 나아가 나라 수준에 적용해보고 그 결과로 얻게 된 길흉화복의 사례를 수 천년에 걸쳐 수집·축적· 집약해 놓은 인류 지혜의 보고(寶庫)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