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의 내게 죽음은 낡은 사전의 오래된 단어처럼 낯설었다. 가까이에서 죽음을 경험할 일이 없기도 했지만, 그보다는 내가 언젠가 죽을 것이라는 사실이 잘 와닿지 않았다. 하지만 앞서 경험한 두 가지 이야기를 통해 나는 죽음을 진지하게 고민해 볼 수 있었다. 죽음에 대한 고민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질문과 맞닿아 있었다.
지상변압기에 부딪히기 직전 찰나의 순간 내 마음 속에는 후회하는 마음이 가득했다. 나는 내가 누구인지, 무엇을 하고 싶은지,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 알고 싶었지만 급하지는 않았다. 오늘이 아니면 내일 할 수 있고, 내일이 아니어도 모레가 있다는 생각으로 안일하게 살아왔던 것이다. 나는 말로 떠드는 것처럼 간절하게 실천하지 않았고, 비로소 죽음이라는 거울을 통해서야 이러한 사실을 객관적으로 인지할 수 있었다. 
사고 후 나는 그날의 사건을 떠올리지도 입에 담지도 않았다. 죽음에 대한 공포는 너무나도 컸고 나는 그 감정을 다룰 수 있는 능력이 없었다. 나는 그저 빨리 잊혀지기를 바라며 관련된 모든 기억을 억누르고 있을 뿐이었다. 프로이트(Sigmund Freud)에 따르면, 이것은 '억압(repression)'이라는 '방어기제(defense mechanism)'로 인간이 감당할 수 없는 정신적 충격을 소화하기 위해 사용하는 심리전략이었다.
하지만 방어기제는 근본적인 해결책과는 거리가 멀었다. 의식 수준에서 해결되지 않은 상처는 꿈을 통해 계속해서 등장했다. 나는 하루가 멀다하고 그날의 사고를 꿈으로 다시 겪었다. 꿈의 큰 줄기는 비슷했지만 내용의 변주가 약간씩 있었다. 그러다 한번은 지상변압기를 피하지 못하고 즉사했는데, 너무 놀라 크게 소리지르며 잠에서 깼다. 두려움에 잠못드는 날들이 이어졌다. 
이상한 신체증상도 발견됐다. 어느 순간부터 무언가에 집중하려고 하면 손이 심하게 떨렸다. 떨림은 나의 의지와 상관 없는 것이었고 그 빈도와 강도가 갈수록 심해졌다.
병원에서는 사고의 후유증으로 신경계의 흥분도가 높아졌다는 진단을 내렸다. 나는 사고 전에는 이런 적이 한번도 없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이 모든 것이 사고의 충격과 관련된 심리적인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심리적 장애를 연구하는 이상심리학 분야의 서적을 살펴보았고, 아무런 내과적 장애 없이 심리적 요인이나 갈등으로 인해 다양한 신체 증상이 반복적으로 발생하는 '신체화 장애(somatization disorder)'를 알게 됐다. 나의 손떨림은 사고에 대한 트라우마(Traumat)가 신체 증상으로 나타나는 것이었다. 생각이 여기에 이르자 나는 사고의 기억을 복기해야 함을 느꼈다. 그리고 그 사고가 나에게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알아내야 했다.
나는 먼저 살아있음에 감사했다. 지금까지는 사고를 떠올릴 때면 내가 왜 A의 차에 타서 이런 일을 겪어야 하는지 후회하고 원망하는 마음만 가득했다. 애당초 일어나지 않았어야 할 일이 생겨 괜히 고생하고 있다는 식으로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비명횡사한 또 다른 꿈 속의 충돌을 떠올리자 그럼에도 불구하고 멀쩡히(?) 살아 있다는 것이 새삼 놀랍게 느껴졌다. 어떻게 보면 보너스와 같은 새 삶을 살고 있는 것인데, 나는 이토록 감사한 삶이 왜 다시 주어졌는지 궁금했다. 질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나는 죽을 수도 있었는데 죽지 않았다. 나를 이렇게 살려둔 이유는 무엇일까. 단순히 아직 때가 되지 않아서 일까. 그때까지 내가 해야 할 일 때문일까. 그러면 그 때는 언제일까, 그 일은 뭘까.'
나는 긴 고민 끝에 두 가지 결론을 내렸다. 아직은 정확히 모르지만 내가 그 사고로 죽지 않은 이유가 분명히 있다는 것, 그리고 반드시 그 이유를 찾아서 일생동안 이뤄내겠다는 것. 나는 하늘을 바라보며 스스로에게 약속했다.
한편 사고 이후 죽음은 삶을 이끌어가는 중요한 판단 기준이 됐다. 선택의 갈림길에서 '만약 내가 지금 당장 죽는다면'이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진다는 말이다.
죽음을 기준으로 모든 것을 생각하면서 나는 비로소 후회 없는 선택을 할 수 있었다. 다른 사람의 시선보다 어떻게 하면 내가 더 즐겁고 행복할 수 있는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무절제하게 먹고 마시는 것보다 규칙과 절제로 준비된 상태에서 죽음을 맞이하는 것이 더 좋겠다고 생각했다.
여러 명과의 얕은 관계보다 한결같은 몇 명과의 깊은 관계 속에서 눈을 감는 것이 더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돈과 명예에 대한 집착으로 회한의 눈물을 흘리기보다 의미와 가치로 충만한 삶에 대해 기쁨의 미소를 지으며 내 이야기를 마무리하면 더 좋겠다고 생각했다.
나를 죽음에 문턱까지 몰고 갔던 사고를 통해 내가 배워야 했던 건 잘 죽기 위해서 잘 살아야 한다는 교훈이었다.
나는 매일 아침 새로운 삶을 시작함과 동시에 죽음을 향해 하루씩 나아가고 있다. 내가 언제 어떻게 죽을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나는 늙은 노인처럼 평안한 마음으로 죽음을 맞이할 수 있는 삶을 살고 싶다. 그리고 그 노인이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던 이유는 지나간 자신의 삶에서 의미와 가치를 찾았기 때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