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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스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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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뢰찾기와 인생

작성일
2022/01/25 19:00
생성일
2022/08/01 01:29
저자
키워드
#게임, #메타포, #문제해결
분류
상담심리
리더십
마음챙김
지뢰찾기는 화려한 그래픽도 없고 매력적인 스토리도 없다. 오히려 누구나 할 수 있고 너무 평범해서 그 진가를 쉽게 알 수 없는 게임이다. 하지만 지뢰찾기는 문제와 문제해결이 반복되는 인생에 대한 거의 완벽한 메타포(metaphor)다. 인생의 도처에 깔려 있는 문제를 피하고 자신의 영역을 일궈내며 뜻대로 상황을 리드하고 싶은 사람에게 지뢰찾기는 훌륭한 스승이 되어줄 것이다.
지뢰찾기는 마이크로소프트 윈도우에 포함된 기본 게임으로 내가 즐겨하는 몇 안 되는 게임 중 하나다. 게임방법은 무수한 회색 칸 중 지뢰가 없는 칸을 모두 클릭하는 것이다. 게임 시작 후 아무 칸을 누르면 숫자가 나타나는데, 이 숫자는 해당 숫자를 중심으로 3x3 영역에 지뢰가 몇 개 있는지를 나타낸다. 만약 클릭한 칸의 3x3 영역에 지뢰가 하나도 없으면 지뢰가 있는 칸까지의 모든 영역이 자동으로 열린다. 게임규칙도 간단하고 실력에 따라 지뢰 개수를 늘려 난이도를 조정할 수 있어 쉽게 질리지 않는 게임이다. 게다가 한 온라인 사이트에 전 세계인들이 모여 역대 순위와 플레이어 순위를 기록하거나 월드 챔피언십을 진행하면서 지뢰찾기를 더욱 풍성하게 즐길 수 있게 됐다.
나는 가로 30개, 세로 30개 총 900개의 칸에서 지뢰 150개가 숨겨진 게임을 주로 했는데, 이 게임을 반복하면서 의외의 깨달음을 얻게 됐다. 그것은 바로 지뢰를 찾는 과정이 인생의 어려움을 해결하는 과정과 묘하게 닮았다는 생각이었다. 단순히 게임에서 엄청나게 대단한 인생의 비밀을 깨달았다고 말하려는 것은 아니다. 다만 1초라도 기록을 갱신하기 위해 꽤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쓰며 온갖 희노애락을 겪어본 사람으로서 다른 사람들보다는 좀 더 깊이 있게 지뢰찾기를 이해할 수 있었다는 말을 하고 싶은 것이다. 지뢰찾기는 내게 다음과 같은 6가지 깨달음을 주었다.
첫째, 처음 시작이 좋을 수도 있고 나쁠 수도 있다. 150개의 지뢰가 숨겨진 900개의 회색 칸을 보고 있으면 망망대해에 떠 있는 조각배의 심정이 된다. 단 한번의 클릭으로 게임을 시작하자마자 죽을 수도 있지만 어찌됐든 게임을 시작하기 위해서는 클릭을 해야한다. 똑같이 게임을 시작하더라도 어떤 사람은 운좋게 지뢰가 없는 칸을 골라 살아남을 뿐더러 매우 넓은 영역의 빈 칸이 열리며 숨겨진 지뢰를 찾기 위한 많은 양의 정보를 확보할 수 있다. 하지만 어떤 사람은 죽지는 않더라도 클릭한 칸 1개만 간신히 열리거나 아주 좁은 영역의 칸 몇 개만 열리는 경우도 있다. 이렇게 되면 다음 선택을 위한 정보가 충분하지 않기 때문에 의사결정에 긴 시간이 필요하고 마음도 조급해진다. 여러모로 불리한 상황이 되는 것이다.
하지만 장기적인 관점에서 보면 처음 확보한 영역보다 훨씬 더 중요한 건 앞으로의 선택이다. 거의 1/4 정도의 빈 칸이 열렸을 때는 좀 더 느긋한 마음으로 시작할 수 있었다. 하지만 선택할 수 있는 정보가 너무 많아 집중력이 흐트러졌고 이미 잘 풀리고 있다는 생각에 주변의 정보를 신중하게 살피고 해석하지 못했다. 나는 금방 지뢰를 밟고 말았다. 게임이 끝난 뒤 보면 내가 누른 칸에 지뢰가 있다는 게 너무나 명백한데 게임 중에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단 한번의 잘못된 결정으로 출발이 좋았던 유망한 게임이 한순간에 끝날 수 있던 것이다. 반대로 4칸이나 5칸 정도의 영역으로 시작한 게임에서는 가진 게 별로 없기 때문에 정신을 날카롭게 유지할 수 있었고, 내가 확실히 통제할 수 있는 영역에서 현재 활용할 수 있는 정보에 집중해 올바른 판단을 내릴 수 있었다. 또한 계속해서 올바른 판단을 내리다보면 어느 순간 지뢰가 없는 청정지대를 만나게 되는데, 이렇게 되면 순식간에 광범위한 영역이 내 손안에 들어왔다.
둘째, 주변을 세심하게 살펴보면 현명한 선택을 도와주는 명백한 신호가 있다. 이건 기록과 상관없이 30x30 게임을 꼭 깨고 싶었던 초창기에 있었던 일이다. 최초의 기록은 767초로 이 기록을 세웠을 때의 희열은 말로 다하지 못할 정도였다. 왜냐면 마지막에 2개의 지뢰가 숨겨진 5개의 칸 중 하나를 선택하기가 정말 어려웠기 때문이다. 꼭 깨고 싶은 마음에 중간에 화장실도 갔다오고 사무실 창문을 열고 심호흡을 하면서 꽤 진지하게 집중했다. 다시 처음부터 5개 칸을 둘러싼 상하좌우 3x3 영역을 세심하게 살펴보았고, 북쪽과 동쪽 그리고 그 사이 동북쪽의 3x3 영역 모두 공통적으로 5개 중 하나의 칸에 지뢰가 있음을 말하고 있었다. 다행히 나는 재검토를 할만큼 충분히 신중했고 처음에는 놓쳤던 신호를 정확히 캐치할 수 있었다. 작은 퍼즐들을 꾸준히 모으고 섬세히 해석하면 큰 그림을 정확히 추론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순간이었다.
셋째, 몇 번의 작은 성공으로 부주의해지면 명백한 신호를 놓치게 되고 게임은 그대로 끝난다. 767초로 가장 높은 난이도의 30x30 게임을 깬 나는 내 실력에 자신감을 갖게 됐다. 그리고 이내 영원히 지뢰를 밟지 않을 것처럼 막힘없이 마우스를 눌러댔다. 처음에는 잘 되는 것 같았다. 무표정하게 늘어선 회색 칸들이 밝게 미소지으며 “내가 지뢰를 숨기고 있어요”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수차례의 시도에도 불구하고 767초는 커녕 절반의 영역도 클리어하지 못한 채 지뢰 위에서 죽음을 맞이해야만 했다. 참담한 기분으로 게임을 복기하는 과정에서 나는 어려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해서 죽는 게 아니라, 쉬운 문제를 제대로 풀지 못해서 죽는다는 걸 깨달았다. 스스로를 지뢰찾기의 신처럼 생각하는 교만함이 바로 쉬운 문제를 풀지 못하는 원인이었다. 나는 마음가짐을 바로 잡았다. 마치 지뢰찾기에 처음 입문하는 사람처럼 작은 정보를 꼼꼼하게 파악하며 조심스럽게 앞으로 나아갔다. 그랬더니 첫 번째 시도만에 495초로 게임을 승리할 수 있었다. 767초를 달성한 지 8일이 지난 시점이었다.
넷째, 게임이 잘 풀리지 않으면 억지로 계속하는 것이 아니라 잠시 멈춰서 주변을 다시 한 번 살펴봐야 한다. 767초에서 순식간에 495초를 달성한 뒤로는 기록 갱신에 속도가 붙었다. 나는 한 달도 채 되지 않아 334초를 기록했고, 일주일이 더 지난 시점에는 253초까지 기록을 단축했다. 이제 게임을 시작하면 처음 확보한 영역의 크기와 상관없이 200초 대의 결과를 만드는 건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200초 안쪽으로 진입하는 건 어려웠다. 정체기가 온 것 같았고 나는 약간의 집착이 생겼다. 그러다보니 주객이 전도되어 일하다 잠깐 쉴 때 지뢰찾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지뢰찾기할 시간을 따로 빼놓고 이 시간을 기다리면서 일하는 처지가 됐다. 이렇게 되자 더 이상 지뢰찾기가 재밌지 않았다. 오히려 253초를 넘어갈 때까지 게임을 끝내지 못하면 스트레스를 받고 게임을 꺼버렸다. 나는 무언가 잘못된 방향으로 상황이 흘러가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래서 한 달 동안 지뢰찾기를 멀리 하기로 결심했다.
그렇게 마음을 달랜 후 집착이 사라졌다고 판단됐을 때 다시 지뢰찾기를 시작했다. 내게는 끝내지 못한 숙제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오랜만에 넓게 펼쳐진 회색 바다를 마주하니 잊고 있었던 희열이 미세하게 느껴졌다. 나는 위험한 폭발물을 해체하는 폭발물 처리반이 되어 전우들의 목숨을 지키기 위해 디지털 전장으로 달려갔다. 달라진 점이 있다면 1사분면에서 일이 진척되지 않을 때 1사분면과 동떨어진 4사분면을 개척하며 보다 유연하게 접근했다는 것이다. 즉, 특정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하나의 방향에만 집착하는 것이 아니라 전혀 다른 측면에서 새롭게 바라보고 새로운 시도를 하는 것이었다. 이렇게 게임을 진행하니 처음에는 전혀 상관없어 보였던 4사분면의 시작점이 빈 칸 사이의 연결에 연결을 거듭하며 1사분면의 문제와의 접점을 만들어냈고, 접점에서 새롭게 발생한 힌트를 통해 최초의 문제를 수월하게 해결할 수 있었다. 결론은 하나의 방법에 집착하지 말고 다른 관점에서 문제해결 시도의 횟수를 최대한 늘리다보면, 서로 다른 시도를 통해 쌓아온 역량이 우연한 기회에 하나로 결집되어 생각지도 못한 성과를 만들어 낸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나는 게임 시작 3개월만에 184초를 기록했다.
다섯째, 하나의 문제에 대해 정확한 답은 찾을 수 없지만 불명확한 여러가지 신호가 있는 경우, 최선의 추론을 통해 실패할 확률이 가장 적은 선택지를 골라야야 한다. 184초를 기록한 뒤에는 어느 정도 지뢰찾기에 숙달되었음을 스스로 알 수 있었다. 게임의 전형적인 패턴이 보이고 지뢰의 배치나 게임의 진행방향 등을 예측할 수 있게 됐다. 이 시점에서 가장 고민이 됐던 건 앞선 게임을 통해 얻게된 나름의 노하우가 전혀 먹히지 않는 상황들이었다. 주변의 작은 정보들을 아무리 꼼꼼하게 살펴도, 잠시 머리를 식히고 다른 각도에서 접근해도 명백한 답을 알려주는 단서를 찾기가 어려웠다. 다만 몇 퍼센트의 가능성을 알려주는 선택지들이 다수 존재하는 케이스가 많았다. 예를 들어 두 칸 중 하나에 분명히 지뢰가 있는데, 두 칸을 둘러싼 8개의 칸에서 제공되는 정보가 각기 다른 확률을 나타내는 경우를 말한다. 이때 모든 확률을 정확히 계산하고 선택하는 것은 아니지만 최대한 논리적으로 ‘and’와 ‘or’를 판단해 선택을 내렸다. 무수한 실패사례를 토대로 판단한다는 측면에서 빅데이터에 근거한 판단이라고 볼 수도 있겠다. 다행히 그간의 실패사례가 많았던지 나름의 성과가 있었고, 나는 좀 더 빈번하게 180초 대의 성적을 기록할 수 있었다.
여섯째, 신호나 힌트도 없고 확률도 가늠할 수 없는 상황을 마주하게 되면 결국 자신을 내던지는 용기로 과감한 결단을 내려야 한다. 180~190초 대의 성적을 꾸준히 기록하던 어느 날, 나는 왠지 특별한 게임을 하고 있었다. 모든 선택이 최선의 결과를 만들어내며 최단기록 달성을 기대하게 했다. 회색 영토의 모든 비밀이 빠르게 풀렸고 나는 마지막 선택의 순간에 다다랐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아무런 단서도 없고 확률도 추론할 수 없는 상황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처음 본 낯선 사례에 당황했고 게임은 ‘살거나 죽거나’ 양자택일을 나에게 강요하고 있었다. 게임의 시간은 계속해서 흐르고 있었고 나는 두 눈을 깜빡이며 마른 침을 삼켰다. 그 순간 나는 지뢰찾기에 몰두했던 지난 6개월을 떠올렸다. 고통과 희열, 좌절과 영광의 장면들이 빠르게 지나갔다. 그리고 동시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마지막 순간에 내가 믿어야 할 것은 오직 나의 운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나는 어쩌면 마지막이 될 수도 있는 선택을 내렸다. 게임의 시간은 169초에서 멈췄다.
169초를 기록한 뒤 나는 지뢰찾기의 여정이 끝났다는 생각이 들었고 다시는 회색 전장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지뢰찾기는 실제 현실과 구분되지 않는 화려한 그래픽도 없고, 영화를 방불케하는 매력적인 스토리가 있는 게임이 아니다. 누구나 할 수 있고 너무 평범하기 때문에 다른 선택지가 없는 상황에서나 겨우 할법한 게임이다. 하지만 무려 6개월이라는 시간 동안 정말 진지하게 지뢰찾기에 몰두한 사람으로서 나는 지뢰찾기가 문제와 문제해결이 반복되는 인생에 대한 거의 완벽한 메타포(metaphor)라는 생각이 들었다. 인생의 도처에 깔려 있는 문제를 피하고 자신의 영역을 일궈내며 뜻대로 상황을 리드하고 싶은 사람에게 지뢰찾기는 훌륭한 스승이 되어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