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home
빅스쿨
home

고독할 수 있는 능력

작성일
2022/01/17 18:30
생성일
2022/08/01 01:29
저자
키워드
#실존, #타나토스, #고독의힘
분류
상담심리
마음챙김
고독(solitude)은 혼자 있어 즐겁고 편안한 상태를 말하고, 외로움(loneliness)은 혼자 있어 누군가 그립고 쓸쓸한 상태를 의미한다. 발생 원인이 따로 있는 외로움과 달리 고독은 예측할 수 없기 때문에 낯설고 당황스럽다. 뿐만 아니라 죽음의 본능인 타나토스(thanatus)를 자극하기 때문에 더욱 다루기 어려운 감정이다. 하지만 실존의 행복과 고독이 동전의 양면처럼 우리의 삶에 언제나 함께 한다는 점을 받아들이고, 고독이 스스로의 위대함을 찾는 여행의 시작이 된다는 것을 깨닫게 되면 삶이 선사하는 축복을 누릴 수 있다.
고독(solitude)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고독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무리와 동떨어져 외롭거나 쓸쓸한 상태를 떠올릴 것이다. 하지만 이는 고독과 비슷한 감정인 외로움(loneliness)에 더 가깝다. 두 감정 모두 혼자 있는 상태라는 점은 같지만 고독이 혼자 있어 즐겁고 편안한 상태를 말하는 것이라면, 외로움은 혼자 있어 누군가가 그립고 쓸쓸한 상태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경험상 외로움보다 고독을 다루는 것이 더 어려운 것 같다. 외로움은 당장 필요한 누군가가 내곁에 없는 것처럼 일정한 조건이 형성되면 발생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예측하기 쉬운 반면, 고독은 모든 상황이 순조롭게 흘러간다 하더라도 어느 날 불쑥 나타나 온 마음을 헤집고 가기 때문에 더욱 낯설고 당혹스러운 것이다.
다른 여러 감정들 중 고독은 훨씬 더 근원적인 특성을 갖고 있다. 그 이유는 고독이 죽음과 밀접한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인간은 타인과의 상호작용 그리고 협력이 없이는 그 누구도 생존을 위해 필요한 자원을 충분히 갖출 수 없다. 그래서 수렵채집사회부터 산업화 시대, 지식정보화 시대 그리고 지금의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이르기까지 끊임없이 타인과의 연결을 추구하고 만들어왔다. 이 상황에서 인간이 홀로 동떨어져 있는 상황이란 무리에서 배척되는 상황이거나 질병이나 부상으로 인해 죽음의 문턱에 남겨졌을 때를 의미했다. 다시 말해, 고독은 본인이 원하지 않고 예측할 수 없으며 갑작스럽게 찾아온 고립의 상황에서 마주하는 감정이기 때문에 인간은 태생적으로 고독을 견디기 어려워하는 것이다. 그래서 무의식적으로 고독을 원인이 따로 있는 외로움이라고 착각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고독이 더욱 무서운 것은 인간에게 내재되어 있는 죽음의 본능을 자극하기 때문이다. 프로이트는 인간이 어떤 측면에서 죽음을 바라고 기다리는 타나토스(thanatus)를 갖고 있다고 보았고, 이를 자신을 파괴해 갈등과 고통이 없는 무(無)로 환원시키고자 하는 충동으로 설명했다. 이러한 죽음의 충동이 무의식적으로 표출되는 것이 공격성의 발현이다. 만약 어떤 사람의 공격성이 내부로 향해 있다면 알콜·약물 중독, 폭식·거식, 무분별한 섹스 등을 통해 자신의 신체를 학대하거나, 자기비하·연민, 열등감·피해의식, 과대망상 등에 빠져 자신의 정신을 파괴할 것이다. 반대로 공격성이 외부로 향해 있다면 모욕적이고 파괴적인 언행으로 다른 사람의 몸과 마음에 상처를 입히거나 공공기물 및 사유재산을 파괴할 것이고 이는 자연스럽게 보복이나 법적 처벌을 초래한다. 결과적으로 이 모든 행위가 죽음을 향한 인생의 진행속도를 높이는 것이 된다.
인간이 고독을 피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인간은 삶을 살아가는 존재이기도 하지만 매일 죽어가는 존재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매 순간을 충실히 살 때 느낄 수 있는 실존의 행복과 생명의 유한함을 자각할 때 느낄 수 있는 실존의 고독 사이를 끊임없이 달려야 한다. 동전의 양면과 같은 아이러니한 감정 앞에서 인간이 할 수 있는 건 고독이 펄떡이는 삶이 선사하는 축복이라는 것을 깨닫는 것뿐이다. 만약 고독의 실재를 인정하지 않고 외면한다면, 고독은 이내 괴물로 변해 삶을 송두리째 잡아먹을 것이다. 만약 혼자 있는 시간을 잠시도 견딜 수 없다면, 자신이 원하는 대로 환경을 해석하고 창조할 수 있다는 생각은 커녕, 평생 동안 환경의 자극에 기계적으로 반응하며 살 수밖에 없을 것이다. 단언컨대 우리는 이러한 삶을 원하지 않는다.
반대로 인간이 고독을 삶의 한 부분으로 담담히 받아들인다면, 고독의 족쇄에서 벗어나 새로운 친구가 주는 선물을 기꺼이 받을 수 있다. 인간은 고독을 기꺼이 선택하는 순간 스스로의 위대함을 찾아 떠나는 여행을 시작할 수 있다. 고독 속에서 만이 내 삶을 발전시킬 수 있는 자기성찰, 우리의 재능과 흥미에 대한 보다 깊은 이해, 그리고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할 혁신적인 아이디어와 영감을 만날 수 있다. 또한 고독은 하나의 주제에 대해 장시간 집중할 수 있는 능력은 키워줄 수 있다. 이러한 집중력은 하나의 대상 혹은 사건에 대해 여러 가지 측면으로 분석할 수 있는 사고력과 이를 바탕으로 창의적인 해결책을 도출할 수 있는 문제해결능력을 키워준다. 그리고 문제해결능력은 모든 성취의 시작이 된다. 끝으로 고독을 통해 완성된 자신만의 철학은 세상의 문제를 나름의 근거로 판단, 연구, 해석할 수 있게 하는 도구가 된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이 도구를 갖고 있는 사람은 자신이 원하는 인생을 스스로 창조할 수 있다. 다시 한 번 강조하자면, 고독의 장점은 고독의 시간을 수동적으로 버팀으로써 생기는 것이 아니라, 고독의 시간을 적극적으로 선택하고 활용함으로써 스스로 만들어 내는 것이다.
실존의 행복과 실존의 고독은 언제나 똑같은 얼굴을 하고 거울 앞에 마주 서있다. 이 말은 고독을 기꺼이 받아들이면 행복할 수 있고, 행복한 순간에도 언제든 고독이 함께한다는 의미다. 고독을 괴물로 만들 것인가 친구로 만들 것인가. 고독의 밤이 길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