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회의 불평등은 ‘88만원 세대(2000년대)’, ‘N포 세대(2010년대)’, ‘수저계급론(2015년)’, ‘대입 공정성 이슈(2020년)’, ‘부동산 공화국(2021년)’ 등의 이슈를 거치며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 최근에는 소득, 자산, 주거, 교육, 문화, 건강 등 불평등의 여러 차원들이 독자적이며 체계적인 다중격차(multiple disparities)로 굳어지며 불평등의 양상이 질적으로 진화했다. 교육은 이러한 불평등의 시퀀스 중 시간적으로 가장 앞서 있기 때문에 최초의 원인을 만들어 불평등을 해소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분야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교사는 가장 핵심적인 역할을 수 있다.
양극화는 세대, 계층, 지역을 관통하는 한국사회의 대표적인 문제다. 1997년 외환 위기를 겪은 뒤 더욱 강화된 승자독식의 경쟁체제에 내몰린 비정규직의 평균임금을 뜻하는 '88만원 세대'가
2000년대에 등장한 이후로
2010년대에 연애, 결혼, 출산을 포함한 N가지 것들을 포기한 세대를 뜻하는 'N포 세대'가 등장했다.
2015년 이후에는 부모의 사회경제적 지원이 없다면 만들기 어려운 비교과 스펙이 입시에 활용되는 학생부종합전형이 금수저 전형이라는 비판을 받으며 '수저계급론'이 등장했고, 이후 2018년에 방영된 JTBC 드라마 <스카이캐슬>로 상류층의 입시행태가 적나라하게 묘사되며 대중들에게 '수저계급론'이 더욱 확대되었다.
2020년에는 조국 전 장관의 딸 조민의 서울대 및 부산대 의전원 입시에 활용된 스펙이 전부 허위임이 밝혀지며 입시제도의 공정성에 대한 청년들의 신뢰가 무너졌고, 20여 차례의 부동산 정책에도 불구하고 치솟는 집 값으로 인해 영끌을 통한 내 집 마련도 불가능한 2030 청년들은 스스로를 '이생망(이번 생은 망했다)'이라고 자조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좌절과 자조는
2021년 3월, 내부 정보를 활용한 LH직원들의 땅투기 의혹이 커지면서 '부동산공화국'과 '벼락거지'를 만든 문재인 정부의 위선에 대한 분노 바뀌었다.
이처럼 한국사회의 불평등이 날이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그런데 최근 약 20여 년 동안 한국의 불평등이 보이는 특징 중 하나는 소득, 자산, 주거, 교육, 문화, 건강 등 불평등의 여러 차원들이 서로가 서로를 강화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이를
황규성(2016)은 다중격차(multiple disparities)라고 정의한다. 다중격차란 다양한 불평등의 영역이 반복적으로 상호작용하며 서로를 강화시켜 개별 영역의 불평등이 작동하는 방식과는 독립적인 고유한 작동방식을 갖춘 불평등의 특수한 형태를 의미한다. 즉, 노동 시장의 양극화와 이중화로 인해 소득 불평등이 커지고
소득 격차는 자산의 불평등으로 연결되며
소득과 자산은 다시 주거 공간의 분리로 이어진다.
소득, 자산, 주거의 격차는 다시 교육에 영향을 주고
학업 성취도는 또다시 소득 격차로 연결된다.
그리고 사회경제적 불평등은 건강과 문화 소비의 격차로 연결된다. 불평등의 중첩이 새로운 현상은 아니다. 하지만 불평등의 중첩이 여러 영역의 불평등이 우연히 겹친 결과라면 큰 문제가 아닐 수 있지만, 그것이 복합적이고 독자적인 구조이자 하나의 체계적인 현상으로 굳어져 가고 있다면 사정은 달라진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 사회의 불평등은 과거와는 구별되는 질적인 전환을 맞이하고 있다는 진단이 가능하다.
이러한 다중격차 속 교육 분야는 한계와 가능성 측면에서 특별한 의미를 갖고 있다. 다중격차의 네 가지 소재지인 소득, 자산, 주거, 교육은 서로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있는 상호 연결 속에서 형성된다. 하지만 교육은 인간의 발달과 성장이라는 관점에서 봤을 때 대학, 직장, 임금, 자산, 인간관계, 그리고 삶의 질과 만족도로 이어지는 불평등의 시퀀스 중
시간적으로 가장 앞서 있는 첫 번째 관문으로 볼 수 있다. 즉, 한 단계의 결과가 다음 단계의 원인으로 작용하는 불평등의 흐름에서 최초의 원인을 만들 수 있는 분야가 바로 교육 분야인 것이다. 한국사회의 맥락에서 교육의 최종 성과는 대학으로 결정되는데 대학은 단순히 간판따기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태어나고 죽을 때까지 경험하는 불평등의 시발점(starting point)이자 촉발기제(triggering mechanism)로 작동하기 때문에 가정별 교육비 투자와 집중양육의 차이에서 비롯되는 교육격차가 극대화되는 지점이다. 이 지점에서 교육제도의 한계가 드러나는데 그것은 바로 교육제도가 다양한 영역에서 누적된 전 세대의 자원을 후 세대에게 대물림하는 효과적인 장치로 활용된다는 것이다. 또한 교육제도는 현대사회의 능력주의(meritocracy)와 결합되어 유산의 유무로 결정되는 출발선의 차이를 고려하지 않은 채 대학, 직장, 소득, 자산 등 개인의 능력을 통해 획득한 모든 것을 공정하고 타당한 것으로 만드는 역할을 한다. 이를 통해 교육격차 이후로 야기되는 모든 불평등은
노력하지 않고 능력 없는 자가 마땅히 받아들여야 하는 현실이 된다.
최근 교육분야의 가장 큰 이슈는 조국사태로 촉발된 대입공정성 이슈이다. 논란의 핵심은 부모의 학력, 소득, 직업, 인맥, 문화적 역량과 같은 사회경제적 지위(SES, Social Economic Status)에 따라 자녀의 교육성과가 달라지는 대입제도가 과연 공정하고 정의로운가에 대한 의문이다. 생명체의 관점에서 봤을 때 인간은 유전자의 명령에 종속된
유전자 전달체(gene carrier)로서 이때 인간의 유일한 존재 이유는 자신의 유전자를 후대에 전달하는 것이다. 부모는 자신의 유전자를 갖고 있는 자식을 통해 영원히 존재할 수 있으므로 지식, 기술, 자본을 포함한 자신의 모든 자원을 자녀에게 아낌 없이 전달함으로써 그들의 적응과 경쟁 그리고 성공을 지원한다. 이러한 행태는 선호나 욕망의 문제라기보다 본능에 가까운 문제로서 종족보존의 본능은 시대, 국가, 정권, 계층, 이념과 상관 없이 공통적으로 나타난다.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명체의 사회는 부족한 자원을 둘러싼 치열한 경쟁이 일상적으로 발생하는 적자생존의 사회다. 그리고 이러한 적자생존의 원리는 능력주의(meritocracy)에 따른 보상체계를 갖고 있는 현대사회에서 더욱 심화되고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봤을 때 조국을 포함한 대다수의 부모들은 자녀가 지위경쟁에서 승리할 수 있다면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는 필연적으로 불평등을 야기한다. 경쟁에서 승리하기 위해서 윗 세대로부터 축적된 자원이 필요하다는 말은
반대로 부모로부터 물려받을 것이 없는 자녀의 경우 대입, 취업, 결혼 등 인생의 주요 고비에서 물려받은 자원이 풍부한 자녀에게 필패한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경쟁에서 승리한 사람은 극소수이며 패배한 사람은 대다수이기 때문에 서로 다른 출발선을 고려하지 않고 능력주의에 따라 승자에게 모든 보상을 몰아주는 사회구조(winner takes it all)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극심한 혼란에 빠질 가능성이 높다.
부모의 인적/물적 자본이 자녀에게 세습되는 현상과 이로 인해 발생하는 불평등의 심화는 다양한 학자들에 의해 연구되는 분야다. 특히 최근에는 이러한 불평등을 주도하는 세력으로 '엘리트 중산층'이라는 개념이 등장했으며 이러한 '엘리트 네트워크'를 세대간 불평등의 원인으로 지목하는 연구도 주목을 받고 있다.
조귀동(2020)은 상급학교 진학, 교육기회 획득, 노동시장 진입 등 자녀교육의 주요 거점에서 나타나는 엘리트 중산층의 행태를 실증적으로 분석함으로써 오늘날의 대한민국을 10%의 중상위층과 나머지 90% 시민 간의 초격차사회로 진단하며, 대한민국이 자신의 학력, 소득, 직업, 인맥, 문화적 역량을 자녀의 인적자본으로 세습하는 엘리트 중산층의 세습사회가 되었음을 밝힌다.
Daniel Markovits(2020)는 뛰어난 지식과 능력을 바탕으로 여러 명의 일을 효율적으로 처리하는 소수의 엘리트가 중산층의 일자리를 감소시키는 주요한 원인으로 분석한다. 엘리트는 많은 돈을 투입해서 학위와 고소득을 얻은 후 그 돈으로 사회적 지위를 유지하는 동시에 자녀를 엘리트로 키우고 지위를 세습한다. 이 과정에서 엘리트는 끝없는 노력으로 스스로를 착취하게 되는데 이러한 착취가 엘리트 스스로를 파멸시키는 결과를 가져온다고 주장한다.
이철승(2019)은 다양한 실증적 분석을 토대로 한국사회의 불평등이 386세대가 국가, 기업, 시민사회를 가로질러 건설한 인적 네트워크를 의미하는 '네트워크 위계'로 인해 발생하고 있음을 밝힌다. 네트워크 위계의 동원, 통합, 배제로 인해 중산층으로의 진입로가 좁아져 경쟁이 격화되었고, 이러한 한국형 위계 구조의 피해는 청년과 여성에게 고스란히 돌아가고 있다고 주장하며 이에 대한 해결책으로 세대 간의 연대와 형평성 정치를 통해 불평등의 재생산 구조를 타파해야 함을 강조한다.
마강래(2016)는 풍요롭고 효율적인 시스템이 구축된 대한민국의 사람들이 행복하지 않은 이유를 다른 사람과 자신을 구별짓기 위한 '지위경쟁'에 있다고 진단하고, 지위경쟁이 이뤄지는 영역을 노동, 소비, 교육, 결혼으로 구분해 경쟁의 양상을 구체적인 사례를 토대로 분석함으로써 지위경쟁의 낭비적 성격을 지적한다.
오찬호(2013)는 오늘날의 이십대를 가혹한 경쟁을 요구하는 사회구조의 피해자임과 동시에 이를 적극적으로 옹호하고 확대하는 가해자임을 밝히며 학력위계주의로 대표되는 이들의 능력주의적 사고가 갖고 있는 한계를 지적한다.
이처럼 엘리트 중산층의 주도로 다양한 영역의 불평등이 체계적인 매커니즘으로 고착화되고 있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은 이러한 불평등의 실체를 정확히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 이따금 사회지도층의 입시비리에 대한 뉴스를 접할 때면 크게 분노하며 이를 해결하지 못하는 정치권에 대한 비난을 퍼붓지만, 이러한 비리가 발생하는 원인과 실태, 그리고 해결방안에 대해서는 깊게 고민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대입, 취업, 결혼 등 삶의 주요 선택에 대한 전략적 접근과 시의적절한 자원 투자에 늘 실패한다. 이는 주로 불평등의 실체를 부정하고 인정하지 않거나 불평등이 나와 상관 없는 일이라고 순진하게 생각하며 지위획득을 위한 의도적이고 집중적인 노력을 유별난 행동으로 치부하거나 불평등을 구체적으로 연구하기 위한 능력과 시간이 부족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현상이다. 그렇기 때문에 교육에서 발생하는 격차가 시간이 지남에 따라 다양한 영역에서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체계화되고 고착화된
다중격차의 메커니즘이 자산축적과 계층상승의 여지를 원천적으로 차단함으로써 평생 동안 불평등에서 빠져나올 수 없게 된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다. 즉, 불평등의 현상만을 인지할 뿐 근본에 자리하고 있는 본질을 파악하지 못하는 것이다. 불평등의 본질을 파악하지 못하면 무엇이 문제이고 이를 어떻게 해결할지 고민조차 할 수 없게 된다. 향후 불평등에 대한 무지는 현재의 10:90의 사회를 1:99의 사회로 만드는 핵심원인으로 작용할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한계에도 불구하고 교육 분야는 국가정책을 통한 문제해결의 여지가 소득, 자산, 주거 분야에 비해 수월하다고 보여진다. 초등학교, 중학교 의무교육, 그리고 작년(2021)부터 시행된 고등학교 무상교육은 교육기회에 대한 국가의 책무성을 강화시켰고, 교육과정, 교원양성, 대입전형 등 교육정책별 국가의 개입을 통해 문해력 저하, 학교중도탈락, 학력격차 등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여지가 크기 때문이다. 따라서 다중격차로 인한 양극화 현상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교육분야의 문제해결에 집중하는 것이 보다 효과적일 것으로 판단된다. 이때 가장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사람은 바로 학교현장의 교사다. 불평등의 본질에 대해서 정확히 이해하고 있는 교사는 이를 해결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수단인 교육의 중요성을 인지하게 되고 이를 바탕으로 최선을 다해 학생의 진로, 진학, 학습 지도에 임할 것을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한국사회에 고착화된 불평등의 명확한 실체를 파악하고 이에 대한 근본적인 해결방안을 고민하는 연구가 절실한 시점이다.